'상어' 손예진, 첫사랑만큼이나 아련하고 불쌍하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6.24 16: 49

[유진모의 테마토크] 처연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해서 연민의 정이 수위를 넘어 철철 넘쳐흐르는 이 여인이 불쌍하다.
KBS2 월화드라마 '상어'의 조해우(손예진)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는 풍성한 여자다. 가야호텔 창업주인 할아버지 조상국(이정길) 덕분에 어려서부터 풍족한 삶을 살아왔다. 비록 나약하고 무능하며 파렴치하기 그지 없는 아버지 조의선(김규철) 탓에 여러가지 힘든 상황을 맞이하긴 하지만 그녀는 꿋꿋이 자라나 촉망받는 서울지검 검사가 된다.
그리고 그녀는 서울지검장 오현식(정원중)의 아들이자 자신의 고교선배로서 현재 가야호텔 본부장을 맡고 있는 오준영(하석진)과 결혼해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철부지같은 조의선이 악의 축같고 겉으로 보기에 인자한 조상국은 그의 청방지축같은 돌발행동을 컨트롤해주는 방어선같지만 사실은 내면에 가장 추하고 악랄한 악의 본성을 숨기고 있는 사람은 조상국이다. 그럼에도 조상국의 조해우를 향한 할아버지로서의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분명히 살아있다.
게다가 오준영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하고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편이다. 늦잠 자는 아내를 위해 푸짐한 아침식사를 차려주는가 하면 늦게까지 야근하는 아내를 위해 도시락을 싸오는가 하면 다른 직원들의 식사까지 챙겨줄 정도로 세심한 남자다.
오준영은 그 어떤 경우에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없고 오로지 해바라기처럼 조해우를 바라보며 그녀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고 배려해준다. 뭔가 미심쩍은 느낌이 들 만큼 자주 나타나는 가운데 조해우의 곁에서 빙빙 도는 자이언트 호텔 대표인 재일교포 김준(한이수, 김남길)이 미심쩍지만 그의 조해우를 향한 강한 믿음과 사랑은 의심이 파고들 여지가 없다. 이쯤 되면 세상 모든 아내들이 꿈꾸는 남편의 환상적인 모델은 그가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행복한 환경과 푸짐한 경제상황 속에서도 조해우는 뭔가에 쫓기는 듯 조급하며 마음 한 구석이 텅 비어있고 불안하다. 그 이유는 한이수다.
주변 모든 사람들은 한이수가 12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믿고 있고, 당시 한이수의 아버지 한영만(정인기)이 죽기 전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였다고 믿고 있지만 조해우는 진실을 알고 있다. 그는 뺑소니 사고를 낸 장본인이 아버지 조의선이고 그의 죄를 한영만이 뒤집어쓴 진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당시 사고를 담당했던 형사 정만철(김민상)이 살해된 최근 사건을 맡고는 두 가지 사건이 연관성이 있으며 여기에는 자신의 가족이 연루된 음모와 감춰진 진실이 있음을 직감하고 사건을 파헤쳐나가려 한다.
게다가 그녀의 가슴을 결정적으로 뒤흔드는 팩트는 한이수가 살아있을 것이란 직감과 여기저기서 드러나는 정황이다. 모든 사람들은 대형 교통사고 속에서 어린 소년이 살아남았을 확률이란 거의 없다고 사망을 확신하지만 조해우는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부터 시작해 계속해서 그의 흔적이 발견되는데 혼란을 겪으며 나름대로 한이수의 흔적을 찾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결정적인 단서 하나가 날아온다. 김준은 익명으로 조해우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고 수소문 끝에 조해우는 그 사진이 오키나와의 한 시골마을이란 사실을 알아내고 그곳으로 날아간다.
사진 속의 집에서 나타난 인물은 늙은 한국인. 그리고 그 노인은 12년 전 18세 쯤의 한 한국인 소년이 찾아와 한달간 머물렀던 얘기를 전해주고 가슴 떨리는 조해우는 그 소년의 방에서 나무로 깎은 상어 펜던트를 발견해낸다. 한이수가 생존해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할 것 하나 없을 조해우지만 내면은 곪을대로 곪았다. 한이수에 대한 죄책감과 그를 향한 연민이 가장 크다. 고3 때 만나 각별한 정을 쌓아온 한이수는 사실 조해우의 첫사랑이다. 한영만이 그녀의 집안의 운전사 겸 집사처럼 얹혀 살았던 탓에 조의선은 한영만은 물론 한이수까지 무시하고 경멸했다. 그도 모자라 조의선은 자신의 죄를 한영만이 대신 짊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세상에서 내쳐진 한이수에 대해 조해우는 한 없이 미안한 뿐만 아니라 사무치게 그가 보고 싶다. 비록 지금은 한 남자의 아내지만 마음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뿌리내리고 있는 첫사랑의 순수한 감정마저 억지로 떨쳐버릴 수는 없다. 그것은 한이수에 대한 한 없는 죄책감과 양심 때문이고 어려서 각인된 첫사랑의 추억이 매우 강렬하고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노력하는 것이고 그 수사의 칼끝이 아버지는 물론 더 나아가 자신의 집안에 깊게 꽂힐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검사로서의 본연의 책임으로 비춰지지만 실상은 한이수에 대한 정과 애착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본능적으로 한이수가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척에서 그가 맴돌고 있다는 것까지 감지했다. 보고 싶지만 그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두렵고 막상 그와 맞닥뜨렸을 때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제어하고 추스려야 할지, 또 남편과의 삼각관계는 어떤 혼란으로 빠져들지 그녀는 두렵기만 하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도 그녀가 바라는 것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한이수가 보고 싶다는 것이다.
여전히 한자릿수 시청률에 머물고 있는 '상어'는 그래서 마니아용 드라마로 분류된다. 이 드라마를 애시청하는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작품성과 재미를 높게 평가한다. 탄탄한 대본을 바탕으로 전 출연진의 열연이 빛을 발한다. 소수의 특권층 인간들이 이해관게로 묶여 그들의 출세와 부의 축적을 위해 그 어떤 부정도 마다하지 않지만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모습은 사회 지도층이다.
그런 추악한 본모습은 사실 감춰져 있기 마련이지만 그 특혜를 받은 자식이 본질을 파헤치려 노력한다는 진실에 대한 통쾌한 통찰이 다수가 서민인 시청자의 가슴을 달뜨게 만든다. 게다가 이 드라마의 멜로는 지금까지 다수의 드라마에서 흔하게 봐온 삼각관계같은 틀에 박힌 전형이 아니다. 조해우를 향한 오준영의 사랑만 보편타당해보일 뿐 주인공인 조해우의 첫사랑에 대한 결론과 그 첫사랑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하면서도 그 그림자를 둘러싼 더욱 커다란 배경을 향해 칼을 가는 한이수의 복합적 심리가 예측불가능하다.
불행하다고 치면 김준이 최악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억울한 죄명을 쓴 아버지를 잃고 자신도 죽은 사람이 돼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이 한이수라고 밝히고 싶지만 세상에 남은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 한이현(남보라) 앞에서조차 낯선 손님으로만 행세할 뿐이다. 이렇게 애닲은 사연을 간직한 가족이라면 당장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끌어안고 폭풍같은 눈물을 쏟아내야 당연하지만 김준은 복수를 위해 자신의 정체를 속임은 물론 사소한 감정마저도 철저하게 제어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 더욱 불행해질 인물은 조해우다. 굳이 김준이 그녀의 가족을 향한 칼날을 날카롭게 갈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이미 그녀와 그녀의 조력자인 베테랑 형사 변방진(박원상)의 수사는 조상국의 목을 옭죄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언젠가 김준이 자신의 정체를 한이수라고 밝혔을 경우, 갈등과 혼돈에 휩싸일 한이수 조해우 오준영의 삼각관계는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구조다.
이게 조해우가 겉으로는 아무런 걱정 없어 보이고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 가장 불행해질 가능성 100%의 불쌍한 여인이란 정황이다.
행복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 했지만 조해우는 그런 선택의 기회마저도 없다. 김준은 이제 압박의 고삐를 더욱 죌 것이고 어느 순간 진실은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그래도 조해우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현재의 결혼생활을 평탄하게 이어가는 가운데 공무원으로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까? 그녀는 현재 서울지검 검사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가야호텔의 경영을 이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가야호텔은 자이언트호텔에 의해 흔들릴 것이고 검사라지만 한낱 공무원이자 가야호텔 본부장의 아내일 뿐인 조해우의 앞날은 절대 평탄치 않을 것이다.
여기서 조해우에게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첫사랑의 추억이다.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조해우가 맞닥뜨릴 첫사랑과의 해후가 마냥 가슴 뛰고 행복하기만 한 걸까? 아무리 뜯어봐도 불쌍하기 그지 없는 그녀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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