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 이승엽의 '역사적 홈런기록' 등에 녹아 든 투수들의 응전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3.06.25 14: 12

성공적이었던 국내 복귀 첫 시즌(2012)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던 이승엽이 지난 6월 20일 드디어 한국프로야구 개인통산 최다홈런 신기록인 352호 홈런(종전 양준혁의 351개)을 때려냈다.
개막 이전 대기록에 단 7개의 홈런만을 남겨두고 있었던 이승엽의 신기록 달성시기가 예상보다는 다소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멘도사 라인 언저리인 2할대 초반의 타율과 최하위권 출루율에 허덕이던 이승엽의 최근 타격 컨디션을 감안하면 오히려 기록달성은 빨리 이루어진 편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아시아 홈런신기록을 썼던 2003년, 대망의 56호 홈런이 떨어진 좌중간 담장 너머 바로 그 부근으로 날아간 역사적 홈런. 장소는 문학구장이었고 결과적으로 라이언 킹의 역사적 먹잇감이 된 상대투수는 SK의 실질적 국내 에이스인 윤희상으로 귀결되었다.

언제나 기념비적 홈런이 터지게 되면 바늘 가는데 실 가듯, 홈런을 내준 투수들의 이름이 희생양이나 기록의 제물로 표현되곤 하는데, 2003년에는 이정민(롯데) 그리고 이번에는 윤희상이었다.
설상가상 이번 이승엽의 홈런은 역전 3점짜리 결승홈런이었던 데다, 여기에 지난해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기선을 제압당하는 2점홈런을 이승엽에게 얻어맞았던 상흔이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윤희상이기에 그 속 쓰림은 보다 컸을 터.
그러나 윤희상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들어갔다 싶었는데 이승엽 선수가 잘 친 것이다’라고. 또 오래 전 무명의 신인투수였으면서도 겁 없이 대들다(?) 56호 홈런을 맞았던 롯데 이정민 투수에게 2003년 이승엽은 “첫 타석부터 정면승부를 해준 이정민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라고 말했었다.
그렇다. 지금까지 탄생된 수 많은 홈런을 비롯한 타격관련 기록들에는 이처럼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기록의 희생양으로 이름이 오를 수도 있음에 개의치 않고 타자에 정면승부를 걸어온 투수들의 응전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지난 6월 7~8일 삼성과의 원정경기(대구구장)에서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혼자 2경기 연속으로 끝내기 홈런을 맞고 경기를 내준 두산의 홍상삼 투수의 뼈아픈 기록 역시 전날의 분패에도 굴함 없는 역투 끝에 나온 기록으로,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삼성으로선 더없이 기쁜 승리였겠지만, 그 이면에는 홍상삼의 작은 도전이 있었다.
홍상삼은 7일 동점상황이던 9회말 채태인에게, 다음날인 8일엔 연장 10회 동점상황에서 박한이에게 각각 끝내기 홈런을 내주었던 것인데, 공교롭게도 채태인과 박한이의 끝내기홈런은 두 선수 모두에게 첫 경험이었다.
특정 팀이 2경기 연속으로 끝내기 홈런을 얻어맞고 패한 역사는 두산 이전에 딱 한번 기록되어 있다. 2003년 6월 20~21일(수원구장) 한화가 현대에게 이틀 연속으로 끝내기 홈런을 내주고 무릎을 꿇었다. 20일에는 구원투수 피코타(한화)가 7-5로 앞서던 9회말 1사후 이숭용에게 역전 끝내기 3점홈런을, 21일에는 투수 박정진이 4-4 동점에서 심정수에게 각각 끝내기 홈런을 허용했었다.
이처럼 특정 투수나 팀이 같은 유형의 반복적인 실패를 경험한 일은 돌이켜보면 프로야구 원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10회말 MBC 청룡의 이종도에게 끝내기 만루홈런을 얻어맞았던 삼성의 좌완 이선희 투수는 그 해 OB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 최종전에서 OB 김유동에게 또다시 승부를 결정짓는 만루홈런을 얻어맞고 구석에서 눈물을 쏟아 비운의 투수로 프로야구 역사에 짠한 이름을 남겼던 기억이 존재하고 있다.
한편 눈을 밖으로 돌려보면 최초의 메이저리거였던 코리언 특급 박찬호 투수가 1999년 4월 24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대결에서 일명 ‘한만두’로 불리는, 한 이닝에 상대 타자 페르난도 타티스로부터 만루홈런을 두 번 거푸 맞아 역사에 두고두고 오르내릴 진기록의 제물이 된 적이 있다. (올 시즌 개막전에서 삼성의 배영수는 상대 팀 두산에게 만루홈런 2개를 내주며 ‘개만두’라는 신조어 탄생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여기에 2001년 올스타전에서 칼 립켄 주니어(볼티모어)에게 그의 생애 마지막 홈런을 안겼고, 같은 해 10월에는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에게 단일 시즌 최다인 71~72호 홈런을 연속으로 얻어맞았던 일까지.
그리고 2001년 11월 1~2일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 4차전과 5차전에서 각각 2점 차의 리드를 안고 클로저(마무리)의 임무수행을 위해 마운드에 올랐지만, 2경기 연속 9회말 2사 후 동점 2점홈런을 맞고 마운드에 주저 앉아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김병현(당시 애리조나)의 일화도 우리의 뇌리에는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나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의 야구팬들은 박찬호나 김병현의 당시 거듭된 피홈런에 관한 기억을 그렇게 아픈 기억으로만 여기지는 않는다. 추억까지는 아니더라도 세계 최고의 무대에 나가 당당히 맞서 던진 그들의 도전을 되려 아름답게 생각하고, 지금도 때를 만나면 당시를 회고하는 말로써 그때의 기억을 더듬곤 한다.
지금은 가고 없는 레전드 고(故) 최동원 투수는 현역시절 홈런을 맞으면 또 맞을까 피하기보다 오기가 생겨 같은 코스에 똑 같은 직구로 다시 승부를 걸었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그러다 또다시 안타나 홈런을 맞은 경우도 많았지만 그는 실력에서는 질 수 있어도 멘탈, 즉 정신력에서는 결코 지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야구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역사적, 기념비적 홈런 들에는 이처럼 투수들의 눈물과 도전이 녹아있다. 희열 가득한 타자의 환호성 뒤로는 좌절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 투수의 어둡고 긴 그림자가 깔려있다.
이정표적인 기록을 세워 팬들을 기쁘게 만든 선수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록을 앞둔 상대에 의연히 맞선 투수에게도 성원을 보내는 일 또한 잊지 말아야겠다. 그들을 기록의 희생양으로 기억하기보다 실력으로 맞서 응전한 당당한 선수로 기억하는 풍토가 짙어질 때 야구기록의 역사는 한층 풍성해질 것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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