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에서는 투수도 타석에 들어가야 한다. 아무래도 타격연습에 소홀한 투수들은 타격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투수 타석에서 안타가 자주 터지는데, 이것도 경기의 또 다른 재미가 된다.
특히 투수가 투수를 상대할 때는 묘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주로 9번 타자로 출전하는 투수가 출루하게 되면 경기를 어렵게 끌고갈 수밖에 없으므로 마운드 위에 선 또 한 명의 투수는 무조건 아웃을 잡아야 한다. 그럼에도 일부 투수들은 투수를 잡는 데 직구면 충분하다는 듯 줄기차게 정면승부를 펼치기도 한다. 류현진이 이러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습성을 잘 이해해 꾸준히 안타를 만들어내고 있다.
류현진은 25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이나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 6⅔이닝 8피안타 4볼넷 2탈삼진 1실점으로 막았다. 7승 도전은 좌절됐지만 시즌 평균자책점은 2.96에서 2.85로 낮췄다.

이날 경기의 분수령은 류현진이 5회 1사 만루를 병살타로 막은 것이었지만 작은 승부처는 4회였다. 1-1로 맞선 상황, 3회까지 류현진은 안타 4개와 볼넷 1개로 숱한 위기를 맞았지만 1실점으로 잘 버티고 있었다. 4회 1사 후 류현진은 브랜든 벨트에게 볼넷을 내줬고 범가너와 승부를 벌였다. 보통 투수가 타석에 들어왔을 때 주자가 1루에 있다면 1사 후라도 번트를 시도한다. 그것이 더욱 득점확률이 높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가너는 강공을 시도했다. 번트를 시도할 생각 조차 없었다. 초구부터 방망이가 나간 범가너는 파울, 두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왔고 류현진은 낙차 큰 커브로 그를 3구삼진 처리했다. 후속 그레고리 블랑코는 1루 선상 강습타구를 날렸으나 1루수 아드리안 곤살레스의 글러브에 공이 빨려들어가 아웃을 당했다.
야구에 만약이란 없지만 이런 상상은 해볼 수 있다. 만약 범가너가 희생번트를 성공시켰다면 1루 주자가 2루에 갔을 것이고 곤살레스가 1루를 커버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블랑코의 타구는 우익선상 2루타가 됐을 수도 있다. 이처럼 야구는 작은 곳에서 승부가 갈리기도 한다.
왜 범가너는 강공을 택했을까. 사실 그는 타격에 능한 선수는 아니다. 프로 5년 통산 타율이 1할4푼9리에 그친다. 올해 역시 1할5푼4리로 부진하다. 시즌 안타가 단 4개밖에 없다. 그런데 그 중 하나가 류현진을 상대로 기록한 안타였다.
때문에 류현진은 경기 후 "첫 경기에 내가 범가너에게 안타를 맞았다. 그때 기억 때문에 번트를 안 댄거 같다"며 웃었다. 여기에 3회 첫 타석에서 범가너는 1루수 정면으로 향해 아웃을 당하긴 했지만 잘 맞은 타구를 날리기도 했다. 여기에 자신감을 얻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그는 "번트를 안 대서 결과가 좋게 나왔다. 그래서 만족한다"고 미소지었다.
<사진> 로스앤젤레스=곽영래 기자,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