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만 못 본걸로 하면 안될까요?” 마지막까지 진한 감동은 역시 무리였을까.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가 무려 23회까지 쌓아온 명품 퓨전 사극이라는 수식어를 마지막 회에서 스스로 떼는 무리수 전개로 안방극장을 들끓게 하고 있다.
배우들의 열연, 탄탄한 대본, 아름다운 동화를 만든 연출력을 내세워 명품 퓨전 사극으로 불렸던 이 드라마가 마지막 회, 그것도 고작 10분 때문에 오점이 생겼다. 진정한 인간애를 다루며 시청자들을 눈물 짓게 했던 이 드라마가 왜 허무맹랑한 환생을 선택했는지 두고두고 아쉬울 뿐이다.
지난 25일 종영한 ‘구가의 서’는 반인반수 최강치(이승기 분)가 사람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유쾌한 무협 활극이다. 강치와 그를 사랑하는 담여울(수지 분)은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소정법사(김희원 분)의 예언은 비켜나가지 않았다. 여울은 조관웅(이성재 분)의 부하가 쏜 총에 맞은 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강치는 무형도관에서 나와 자신의 본성을 깨닫기 위해 길을 떠났다. 사람이 되기 위한 구가의 서를 찾는 일은 미뤘다.

그리고 드라마는 422년의 시간이 흘러 2013년 현재가 됐다. 강치는 400년의 시간 동안 불로불사의 몸인 신수로 살면서 부를 축적해 값비싼 스포츠카를 몰고다녔다. 여울은 경찰로 환생해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강치를 마주했다. 두 사람은 전생에서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이룰 가능성을 남기며 시청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야말로 반전 해피엔딩이었다.
제작진이 예고한대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진정한 반전 결말이었다. 방송 후 인터넷에는 ‘모든 것이 소설이 아니냐’는 논란이 빚었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과 버금가는 반전 결말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물론 강치와 여울이 현생에서 다시 사랑을 이룬다는 행복한 결말에 만족스러워하는 시청자들도 있었지만 뜬금 없는 환생이 그동안의 감동을 깨뜨린다는 지적이 더 많았다.
‘구가의 서’는 사람은 될 수 없지만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강치를 통해 진정한 인간애와 자아가 무엇인지 살펴보겠다는 기획의도로 출발했다. 이 드라마는 지난 4월 8일 첫 방송 이후 3개월여 동안 강치가 따뜻한 인간애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단 한번도 기획의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마지막 회가 마무리되는 10분간의 환생 이야기에 대한 시청자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사실 ‘구가의 서’는 한국 드라마 여건상 기획의도가 변질되고 개연성 없는 전개로 산으로 가는 드라마가 부지기수였지만 이 드라마는 흔한 막장 논란 없이 촘촘하게 얽힌 갈등 구조를 이어가는 탄탄한 힘이 있었다. 강치와 그를 돕는 이순신(유동근 분), 여울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표현하는 강직하면서도 자애로운 가치관은 매순간 감동을 안겼다.
인간과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은 액션과 판타지라는 익숙하지 않은 장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무엇보다도 실존 인물인 이순신과 조선을 노리는 왜구의 침략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에 반인반수 최강치의 인간이 되기 위한 여정이라는 허구를 적절히 결합해 신선함과 익숙함을 동시에 선사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그렇지만 마지막 회에서 다룬 환생은 변종을 통한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너무 멀리 갔다는 지적이다. 이 드라마가 다루고자 했던 깊은 울림이 환생이라는 뜬금 없는 설정으로 인해 한순간에 장난처럼 여겨졌다. 이순신 장군 역의 유동근이 국가정보원 요원으로 변신한 마지막 장면은 실소까지 터졌다.
작품의 완성도는 반전 결말로 인해 시청자들의 반응이 분분하지만 배우들의 열연은 끝까지 빛났다. 이승기, 수지, 유연석, 이유비 등 젊은 연기자들의 호연과 이성재, 유동근, 조성하 등 중견 연기자들의 탄탄한 뒷받침이 흡인력 있는 구성의 이유가 됐다. 이승기와 수지의 완벽한 조화와 퓨전 사극에서 무게감을 더한 중견 연기자들의 카리스마 대결은 ‘구가의 서’를 보는 맛이 있는 드라마로 만들었다. 가수 겸 배우 이승기의 한층 발전된 연기력과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수지의 사랑스러운 로맨스 연기는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한편 ‘구가의 서’ 후속으로는 16세기말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과학과 예술의 결합체인 조선시대 도자기 제작소 분원을 배경으로 사기장 유정(문근영 분)의 치열했던 예술혼과 사랑을 그린다. 문근영, 이상윤, 김범, 박건형, 서현진, 전광렬, 정보석, 한고은, 이광수, 변희봉 등이 출연하며 다음 달 1일 오후 9시 55분에 첫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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