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 쿠팩스는 메이저리그를 풍미했던 다저스의 전설적인 좌완투수다. 1955년에 데뷔, 12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쿠팩스는 통산 165승 87패 평균자책점 2.76을 기록했다. 지독한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고작 서른 살이던 1966년 은퇴를 선언, 200승을 넘지 못했지만 그는 1962년부터 1966년까지 5년 사이에 리그를 초토화하며 강한 인상을 남겨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했다. 단 5년의 활약으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것이다.
쿠팩스가 리그를 지배한 '황금의 5년'에 남긴 기록은 놀랍다. 111승 34패로 승률이 무려 7할6푼6리에 달했고 그 기간동안 단 한 번도 평균자책점 1위 타이틀을 내려놓지 않았다. 또한 그는 5년 중 3번이나 트리플크라운(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을 차지했고, 사이영상도 3번이나 만장일치로 수상했다. 이닝 소화력도 뛰어나 176번의 선발 출전에서 완투만 무려 100번, 완봉승은 33번, 노히트노런은 4번, 퍼펙트게임은 1번을 기록했다.
다저스 구단의 전설 쿠팩스도 시작은 평범했다. 사실 쿠팩스는 데뷔 초반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다. 쿠팩스의 메이저리그 데뷔 연도는 1955년, 다저스가 뉴욕에 있던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이다. 그 해 19세의 쿠팩스는 12경기에서 2승 2패 평균자책점 3.02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에 첫 발을 내딛었다. 1955년 6월 24일, 쿠팩스는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이 경기에서 쿠팩스는 2이닝을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데뷔전을 마쳤다. 주목 할만한 결과가 나온 경기는 아니었지만, 전설의 첫 등판이라는 점 하나만으로 구단은 '6월 24일'을 기억하고 있다 .

쿠팩스는 한국인 메이저리거와도 인연이 깊다. 박찬호가 다저스에서 활약하고 있을 때 쿠팩스는 그에게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박찬호는 쿠팩스를 두고 "그는 내 야구인생의 스승"이라는 말까지 했다. 현재는 다저스 구단 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는 쿠팩스는 올 시즌을 앞두고 스프링캠프에서 류현진을 만나기도 했다. 당시 쿠팩스가 류현진에게 한 말은 '빅 가이(big guy)' 였다.
다저스 구단은 쿠팩스가 빅리그 데뷔전을 가진 이날을 잊지 않았다. 오는 28일 쿠팩스 관련 행사를 열어 입장 관중에게 쿠팩스 인형을 증정할 계획이다. 다저스가 준비한 선물은 'Koufax bubblehead'로 머리 부분에 스프링이 달려있는 인형으로 무려 5만개를 준비했다. 쿠팩스가 다저스에서 데뷔전을 치른지 정확히 57년, 그와 같이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동양인 투수가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류현진은 이날 샌프란시스코 타선을 맞아 6⅔이닝 8피안타 2탈삼진 4볼넷 1실점을 기록했다.
류현진은 이날 경기가 쿠팩스가 등판했던 경기인 걸 모르고 있었다. 경기 후 그는 "오늘 선발로 등판하는 경기라 내게 (구단 관계자들이) 말을 걸지 않았다. 그래서 (쿠팩스가 데뷔전을 치른 날인지) 몰랐다"고 답했다. 메이저리그 루키 류현진에게 중요한 것은 눈앞에 있는 타자들을 돌려세우는 것, 아직까지 구단의 역사까지 꿰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구단의 전통과 역사는 전설을 기억하고 팬들의 가슴에 새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한국 프로야구가 쌓아 온 32년의 역사도 이제는 결코 짧은 것이 아니다. 우리도 선동렬, 최동원, 송진우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들의 첫 등판 날짜를 기념하는 건 어떨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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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캠프에서 쿠팩스와 만난 류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