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서늘했다가 때론 한없이 부드러운 남자. 지난 25일 종영한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 속 박태서를 연기한 배우 유연석(29)의 눈빛은 참으로 변화무쌍했다. 아버지 박무솔(엄효섭 분)을 죽게 만든 조관웅(이성재 분)에게 맞설 때는 카리스마가 넘쳤고, 단 하나 뿐인 벗이자 반인반수 최강치(이승기 분)를 대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다정했다. 유연석은 미소를 짓느냐 짓지 않느냐 단순한 표정 하나를 두고도 극과 극의 감정을 전달 할 수 있는 배우다.
고된 드라마 촬영을 갓 마치고 만난 유연석은 아직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촬영이 끝난 후 오랫동안 길었던 머리카락을 자르고 오랜 만에 한복 아닌 의상을 곱게 차려 입었지만 아직까지 한복이 아닌 현대 의상이 얼떨떨하다.
“사극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좋은 기억만 남아 있었어요. 촬영도 즐거웠고 안방극장에 제 얼굴을 알릴 기회가 생겨서 개인적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촬영이 힘들었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섭섭하고 아쉽네요.”

유연석은 영화 ‘건축학개론’과 ‘늑대소년’ 등을 통해 스크린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구가의 서’에서도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첫 사극 출연이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소화력은 이 드라마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특별히 사극이어서 힘든 일은 없었어요. 멋이 살아 있는 한복을 입는 것도 그리고 무게감이 있는 이야기를 연기하는 것도 즐거웠어요. 연기할 때 짜릿한 게 있더라고요. 다음에도 사극에 출연하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지체 높은 왕 연기를 하고 싶네요. 비운의 사도세자 같은 캐릭터도 좋고요.(웃음)”
‘구가의 서’는 판타지 무협 활극이라는 이색적인 장르에도 배우들의 호연, 탄탄한 대본, 아름다운 연출 등에 힘입어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높은 관심을 받았다.
“정말 이야기가 힘이 있고 밀도가 있었어요. 강은경 작가님이 태서가 동생 박청조(이유비 분)를 지키기 위해 배신을 할 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게 세밀하게 만들어주셨어요. 지문이 굉장히 세세하거든요. 작가님이 연기를 할 때 놓치는 부분 없이 섬세하게 감정을 적어주셨죠. 그런 완벽한 대본을 신우철 감독님이 섬세하고 깔끔하게 연출을 해주셨어요. 왜 감독님이 그동안 인기가 많은 드라마를 만드실 수 있었는지 이번에 정확하게 알게 됐죠.”
태서는 초반 관웅의 암시로 인해 자신을 믿고 따르는 강치를 죽이려고 하거나, 동생 청조를 구하기 위해 배신을 하는 등 내적인 갈등이 많은 인물이다. 하지만 결국엔 강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목숨까지 걸며 도와주는 믿음직스러운 행동으로 안방극장의 지지를 받았다.
“태서가 강치를 배신하는 것도 동생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죠. 당장은 나쁘게 보이는 행동이지만 이유는 있었어요. 배신 후 죄책감을 갖는 모습이나 소리를 죽이고 우는 장면은 태서의 행동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가 됐죠. 태서는 절실함이 있었어요. 가족애가 큰 인물이에요. 가족을 지키려는 절실함이 분노가 됐고 분노가 배신으로 이어졌죠. 그래서 연기를 하다가 우는 장면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눈물이 많이 났어요.”
유연석은 이번 드라마에서 감정을 폭발하는 연기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특히 관웅의 계략으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고문을 받는 연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너무도 안타깝게 만들며 눈물이 흐르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 장면을 연기하면서 너무 소리를 지르고 악에 바치다 보니 실제로 정신을 잃었어요. 정말 몸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쓴 느낌이었어요. 관웅을 노려보고 감정을 폭발하는 장면 때문에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죠. 그 장면을 연기하기 전부터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정말 신경을 많이 썼거든요. 제 연기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은 없어요.”
유연석은 이번 드라마에서 가수 겸 배우 이승기와 호흡을 맞췄다.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두 사람은 드라마를 통해 급격하게 친밀해졌다.
“이승기 씨가 나이에 비해 경험이 풍부하잖아요. 주인공으로서 극을 이끌어가려는 책임감이 있는 친구예요. 대화가 잘 통했고 유독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촬영장에서 이승기 씨 뿐만 아니라 수지 씨, 성준 씨 등과도 친하게 지냈어요. 유독 우리 드라마 촬영장 분위기가 좋았죠.”
유연석은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tvN ‘응답하라 1994’에 출연한다. 당장 다음 달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24부 드라마를 막 끝냈지만 쉬지 않고 달리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계속 연기를 해서 지금도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게 좋아요.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목표를 향해 집중하는 과정이 재미가 있죠. 재충전을 하는 시간에도 목표를 생각하고 달려가는 것을 떠올리면 즐거워요. 이순재 선생님이나 신구 선생님, 박근형 선생님, 백일섭 선생님이 ‘꽃보다 할배’에 출연하시잖아요. 전 그 분들이 목표예요. 나이가 들어도 열정적으로 연기를 하시는 선생님들을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유연석은 요즘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진짜사나이’를 즐겨보고 있다. 공군에서 군복무를 한 그는 군체험 예능프로그램 ‘진짜사나이’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진짜사나이’에 출연하고 싶어요. 공군에 가게 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요즘 정말 재밌더라고요. 출연자 분들의 군생활을 보면서 많이 공감하고 있어요. 출연 꼭 하고 싶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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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