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 타자 대신 투수로 뛰었다면?
OSEN 손찬익 기자
발행 2013.06.28 06: 05

'빅보이' 이대호(오릭스)는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
이대호는 경남고 시절 투수로 더 유명했다. 1998년에는 팀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하며 1998년 청룡기와 봉황기 우승을 이끌었다. 2001년 롯데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은 이대호는 계약금 2억1000만원을 받을 만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2001년 롯데 자이언츠 팬북의 선수 소개 코너에는 이대호에 대해 이렇게 소개돼 있다. '차세대 에이스로 결정, 뛰어난 체격에 유연성까지 완벽하다. 볼을 놓는 순간 타이밍만 완성되면 누구도 치지 힘든 좋은 볼을 갖췄다. 150km를 손쉽게 넘나드는 구속에 변화구도 자유롭게 구사한다. 배짱까지 두둑해 거인 마운드의 새 희망으로 정해졌다'.

입단 직후 어깨 통증에 시달렸던 이대호는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다. 한국 야구사를 바꿔 놓는 선택이었다. 이대호는 2006년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사상 첫 타격 7관왕 등극과 9경기 연속 홈런 신기록을 세우며 국내 최고의 타자로 명성을 떨쳤다. 이대호는 "방망이 하나로 일본에 왔다"고 웃었다.
이대호는 2011년 11월 1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경남고-부산고 출시 라이벌 빅매치에서 마운드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8-3으로 앞선 5회 경남고의 4번째 투수로 등판한 이대호는 1⅔이닝 3실점(6피안타 2탈삼진)을 기록했다. 직구 최고 137km까지 스피드건에 찍혔다.
야구에 만약이라는 게 없지만 이대호가 타자 대신 투수로 뛰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손)민한이형이 1선발, 내가 2선발로 뛰었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 뒤 "최고의 투수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아마도 지금 만큼 잘 하진 않았을 것 같다. 평범한 선수로 1,2군을 오가거나 일찍 은퇴해 지도자가 되지 않았겠냐"고 재치있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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