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감이 만든 윤길현의 업그레이드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06.29 07: 33

정대현(롯데) 이승호(NC) 송은범(KIA)은 팀을 떠났다. 정우람 고효준은 군 복무 중이고 엄정욱 전병두는 재활 중이다. 채병룡은 2군에 있다. SK의 왕조를 열었던 벌떼야구의 멤버들은 그렇게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 역사를 기억하는 한 선수가 남아있다. 윤길현(30)이 그 주인공이다.
2002년 SK 유니폼을 입은 윤길현은 SK의 벌떼야구를 상징하는 선수 중 하나였다. 2007년에는 무려 71경기에 나서 8승3패18홀드 평균자책점 2.88을 기록하기도 했다. 핵심 중 핵심이었다. 그러나 2009년을 마친 뒤 군 복무를 위해 팀을 떠난 이후로는 가시밭길이었다. 팔꿈치 수술이 이어졌고 지난해 복귀 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해 성적은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0.80. 윤길현의 이름값과는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었다.
겨우 내내 칼을 갈았다. 직구·슬라이더 투피치 투수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체인지업도 부지런히 연마했다. 몸도 아프지 않았다. 의욕적으로 운동에 임했다. 그러나 너무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의 구위를 무디게 했다. 고비 때 무너지는 일이 적지 않았다. 필승조와 추격조를 오고 가며 쉽지 않은 시기를 겪어야 했다. 결국 5월 20일 1군에서 말소됐다.

한 달 가까이 2군 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2군 코칭스태프의 평가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김용희 SK 퓨처스팀(2군) 감독은 윤길현이 2군으로 처음 내려왔을 당시 “좀 더 많이 던져야 할 것 같다”고 구위 및 제구 저하를 우려했다. 이에 윤길현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고 털어놨다. 더 빠른 공, 더 좋은 공을 던지기 위한 그의 욕심은 미묘하게 투구폼까지 바꿔놓고 있었다. 제구가 잡히지 않은 원인이었다.
교정에 들어갔다. 김용희 감독과 김상진 퓨처스팀 투수코치는 윤길현에게 기술 및 심리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상진 코치는 투구폼의 변화를 지적했다. 무의식적으로 공을 찍어 누르려고 하다 보니 위에서 아래로 팔스윙이 이뤄지고 있었다. 윤길현은 “김 코치님이 편안하게 팔스윙을 하라고 조언하셨다. 위에서 아래로가 아닌, 옆에서 앞으로 팔스윙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제구가 잡혔다. 구속도 돌아왔다. 25일 목동 넥센전에서는 그런 윤길현의 달라진 모습을 잘 볼 수 있었다. 특유의 바깥쪽 승부가 살아났다. 바깥쪽에 꽉 차는 직구와 슬라이더 조합에 넥센 타자들은 좀처럼 배트를 내밀지 못했다. 2군에 내려가기 전 자주 나왔던 높은 공도, 급격하게 흔들리는 제구의 기복도 없었다. 이만수 SK 감독도 “제구가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성준 SK 투수코치는 윤길현의 업그레이드를 기술적인 측면과 더불어 정신적인 무장에서도 찾았다. 성 코치는 “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공을 던지는 것 같다”고 윤길현의 정신무장을 평가했다. 이제 윤길현은 더 이상 어린 유망주가 아니다. 팀에서도 확고한 위치를 잡기 위해서는 자신의 진면모를 보여줄 때가 됐다. SK 불펜에서 필승조 경험이 가장 풍부한 선수이기에 벤치의 기대도 크다. 업그레이드된 윤길현의 시즌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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