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26,LA 다저스)이 아직 한화 이글스 소속이던 지난해 초, 그러니까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소망을 드러낼 때의 이야기다. 당시 류현진은 자신의 우상으로 클리프 리(35,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꼽았다. 2008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 상 수상자인 리는 류현진과 같은 좌완투수, 게다가 체인지업을 주무기로 한다는 점도 같았다.
성공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류현진은 올해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두 번째 선발로 시즌을 시작한 류현진은 전반기 모든 경기에서 최소 5이닝 이상 던지면서 다저스 마운드의 명실상부한 2선발로 거듭났다. 시범경기 때까지만 하더라도 선발 자리에 의문부호가 붙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저스 전력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30일(이하 한국시간), 류현진은 자신이 우상이라고 말했던 리와 선발 맞대결을 벌이게 됐다. 이달 중순 비로 인해 선발 로테이션이 하루 밀리면서 극적으로 성사된 맞대결이다. 6경기 연속으로 승리가 없던 류현진은 시즌 7승 길목에서 리를 만났다. 올 시즌 역시 최고의 좌완으로 활약하고 있던 리와의 맞대결, 류현진에게는 행운이 될지 불운이 될지 불투명했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류현진이 맞대결에서 당당하게 승리를 거두는 것. 안 그래도 주목도가 높은 경기에서 리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둔다면 류현진에 대한 관심은 집중될 수 있다. 그리고 류현진은 우상과의 맞대결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공을 던졌다.
류현진은 이날 체이스 어틀리에게 홈런 2방을 허용하긴 했으나 7이닝 7피안타 6탈삼진 2실점으로 시즌 13번째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투구수는 108개(스트라이크 66개, 볼42개)를, 최고 구속은 94마일(약 151km)까지 찍었다. 또한 류현진은 평균자책점이 2.83으로 더 끌어 내렸다.
리 역시 마운드에서 꿋꿋하게 버텼다. 1회 핸리 라미레스에게 스리런포를 허용하긴 했지만 4회 무사 만루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기면서 자신이 왜 메이저리그 최고의 좌완투수로 불리는지 증명했다.
두 투수는 누구도 승리에 입맞춤하지 못했다. 억울한 쪽은 류현진이었다. 7승을 눈 앞에 두었으나 9회초 3-2로 앞선 가운데 푸이그와 켐프의 실책이 나오면서 동점을 내주는 통에 실패했다. 반면 리는 7이닝 3실점으로 잘 던지고도 패전위기에 몰렸으나 기사회생했다.
류현진은 결국 6월 한 달 동안 승리를 올리지 못했다. 그나마 꿈만 같았던 우상과의 맞대결에서 판정승한 것이 그에게는 위안거리였다.
<사진> 로스앤젤레스=곽영래 기자,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