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투수에게 있어서 최고의 덕목은 최대한 많은 이닝을 꾸준하게 소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감독들은 9이닝 완봉-조기강판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형 투수보다는 6~7이닝을 2실점 정도로 꾸준히 막아주는 선수를 선호한다. 이른바 계산이 서는 선수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류현진(26,LA 다저스)의 이닝소화 능력은 경이적이다. 루키 시즌을 보내고 있음에도 단 한 경기도 조기강판되지 않았다. 올 시즌 16번의 등판에서 13번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고 딱 한 번만 5이닝을 채우고 마운드를 내려갔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돈 매팅리 다저스 감독은 류현진이 퀄리티스타트를 한다고 해서 특별한 멘트를 하지 않는다. 시즌 초반에는 "환상적인 피칭" 혹은 "루키답지 않은 예술"이라며 미사여구를 늘어 놓았지만, 30일(이하 한국시간) 류현진이 7이닝 2실점을 기록한 경기에서는 "류현진이 마운드에서 잘 버텨줬다"고 말할 뿐이다. 류현진에 대한 달라진 매팅리 감독의 기대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다저스에게 30일 경기는 큰 중요성을 가졌다. 원래 연승이 끊어진 뒤 3경기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연승이 길어지면 팀에 과부하가 걸리고, 때문에 연승이 끊어졌을 때 선수들의 긴장이 풀려 다시 연패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저스는 29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1-16으로 지면서 연승이 끊어졌다. 어차피 연승이 끊어질 것이었다면, 깔끔하게 대패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다저스는 점수를 줘도 너무 많이 줬다. 15점 차로 홈에서 진 것은 1962년 다저스타디움 개장 이후 가장 나쁜 기록이다.
30일 경기에서도 연승의 후유증은 그대로 나타났다. 불펜으로 등판한 로날드 벨리사리오와 켄리 잰슨은 다시 흔들렸다. 벨리사리오는 6연승 중 4경기에, 잰슨은 5경기에 등판했다. 계속된 등판에 피로감이 쌓였고, 결국 류현진의 시즌 7승 길목에서 불펜 방화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경기에서 류현진은 클리프 리를 상대로 7이닝동안 7피안타 2실점으로 버티면서 팀 승리에 밑거름이 됐다. 시즌 5번째 퀄리티스타트 플러스(7이닝 3실점)까지 기록했다. 그렇지만 현지 언론 역시 류현진의 호투에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았다. MLB.com만 "클리프 리에 필적했다"는 표현을 썼을 뿐이다.
현지에서 류현진의 호투에 대한 반응이 약해진 것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이제 류현진은 '퀄리티스타트 보증수표'와도 같은 선수가 됐다. 오히려 류현진이 조기강판을 당한다면 더 큰 뉴스거리가 될 것이다. 미국 진출 반 년만에 류현진은 자신의 위상을 이 만큼이나 높여 놓았다.
<사진> 로스앤젤레스=곽영래 기자,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