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혜린의 스타라떼]연애하고 싶다면 요즘 가요를 들어보자.
요즘 가요 속에는 당당하게 야한 여자와, 여자들에게 야해지라고 외치는 여자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당당하게 '못돼빠진' 여자들이 득세 중이다. 그런데 이렇게 당당하게 야한 여자들이 또 연애까지 잘한다.
가요 속 여자들은 신체적 매력을 내세우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스킨십 진도를 빨리 빼라고 오히려 재촉한다. 예전에는 은근한 유혹이라면 요즘엔 노골적 도발이다. 걸스데이가 '기대해'에서 멜빵을 끌어내리며 마치 옷을 벗는 듯한 그림을 연출한 건 얌전한 편이었다. 달샤벳은 아예 치마를 뜯어내 하반신에 딱 달라붙은 숏팬츠를 보여준다. 걸스데이는 후속곡 '여자 대통령'에서 엉덩이를 격하게 흔들며 꼬리를 살랑거린다.

청순가련 걸그룹도 있다고? 이제 가요계에 얼마 남지않은, 여성스러운 걸그룹 헬로비너스 마저도 최근 활동곡 '차마실래?'에서 '날 좀 더 알고 싶다면 (집에) 들어와서 차마시자'고 외쳤다. '혼자인 밤은 참 길어요. 그댈 더 알고 싶어요. 아침이 올 때까지 부탁할게요'라는 부분은 노래를 제외하고 보면 19금 영화 카피 같기도 하다. 이들은 뮤직비디오에서 잘생긴 남자에게 약을 먹여 '거사를 치르는' 듯한 스토리도 연출한다. 어찌보면 제일 화끈하다.
상황이 이쯤 되면 섹시 걸그룹은 안봐도 뻔하다. 달샤벳은 신곡 '내 다리를 봐'에서 '맨날 손만 잡았다 놨다 그게 충분하니, 뽀뽀도 안해. 넌 언제 진도 나갈거니'라고 톡 쏘아 붙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눈 말고 다리를 봐'다. 그동안 숱한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에 머무는 남성들의 시선을 불편해 하며 눈을 봐달라고 하던 '내숭'을 전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걸스데이는 신곡 제목 자체가 '여자 대통령'이다. 뭔가 대단한 여권신장을 노래할 것 같지만 일단 여자가 먼저 키스를 하라는 주장이다. 노래는 '우리나라 대통령도 이제 여자분이신데 뭐가 그렇게 심각해. 왜 안돼. 여자가 먼저 키스 하면 잡혀가는건가?'라는 랩으로, 정치상황과 스킨십 문제를 연결시키는 기가 막힌 비약을 선보이고 있다.
남자 눈치도 안본다. 멋진 언니들은 스스로 잘났다고 선언했다. 씨엘은 '나쁜 기집애'에서 '콧대는 지존, I Never Say Sorry, 가식은 기본, 내 똑똑한 머리'라며 당당한 자기애를 표출했다. 이효리도 '배드 걸스'에서 '독설을 날려도 빛이 나는 여자, 알면서 모른척하지 않는 여자'라며 남자들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음을 과시했다.
보통 이렇게 센 언니들은 '남자 타도'를 외치며 연애를 나 몰라라 했다. 그런데 요즘 이 '센 언니'들은 사랑을 더 이상 포기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랑을 뻔뻔하게 잘 해낸다. 이효리가 '성공은 혹독하게, 사랑은 순수하게, 키스는 좋아 어쩔 줄 모르게'라고 외치면 씨엘은 '눈 웃음은 기본, 내 눈물은 무기, 이 미소는 Fire 널 애태우니까'라고 받으며, 연애 역시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당연히 피해자도 등장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거친 남성들이 모인 힙합계에서는 나쁜 여자에 눈물 흘리는 순정남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들의 태도도 이상하다. 욕을 하는 것 같은데, 좋아 죽는 모양새다.

범키는 최근 음원차트를 석권한 '미친 연애'에서 '넌 내옆에 누워 애인 같이, 나하고 넌 딱 내일아침까지만 함께 하지'라며 뻔뻔하게 바람을 피우는, 그러나 이를 말릴 수 없는 남자의 무력감을 노래했다. '나한테 닿은 몸 안땐채, 아무 것도 모르는 그 놈한테는 아무렇지 않게 내일은 언제보냐 물어'라는 가사는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생생하다. 하지만 노래는 결국 '이러면 안되는줄 알면서 자꾸만 빠져 들고 있어'로 끝난다.
나쁜 여자는 다이나믹 듀오에게도 포착됐다. 2일 오후 현재 음원차트를 점령 중인 신곡 '뱀'은 아예 여자를 뱀에 비유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여성 비하라며 펄쩍 뛸만도 하지만, 이제 여론은 '여자가 그렇게 못될 수도 있지', 그리고 '그게 좀 멋있을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다이나믹 듀오는 이 노래에서 '내가 너의 옹달샘은 아닌데, 왜 항상 커피 아님 술만 얻어먹고 가냐'라고 불만을 표하면서도 '삼킬게 아니라면 넌 왜 나를 물었어? 굴복한 내 맘을 넌 요요처럼 맘대로 밀고 당기고 바닥에다 굴렸어'라며 KO패를 시인한다. 노래 속에서 문자메시지를 기다리는 것도, 새벽에 불쑥 찾아오는 여자를 기다리는 것도 모두 남자의 몫이다.
가요는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달라진 풍속도를 제일 빨리 캐치해내는 편이다. 10~30대가 강렬하게 반응하므로, 이들의 가치관과 경험담에 딱 맞아 떨어지는 가사와 주제만이 살아남게 된다. 그래서 최근 가요계에 불어닥친 성역전 현상은 최근 젊은 층의 달라진 연애 풍속도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 될 수도 있다는 풀이다.
앞으로도 역전 현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귀엽거나 순애보를 내세운 여가수들은 줄줄이 낭패를 보고 있으며, 음악 방송을 주름잡던 짐승돌의 패기도 주춤하다. 요즘 연애가 잘 안되나? 이미 지나가버린 유행가의 가사처럼 연애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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