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윤가이의 실은 말야] 대한민국 톱스타 커플들이 비밀 연애 중 '덜미'를 잡혔을 때 공식 입장으로 가장 많이 써먹는 말은 '알아가는 단계'다. 이만큼 위기 돌파(?)에 효과적인 문장도 없다. 둘의 사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무겁거나 끈적해보이지도 않는, 상당히 '캐주얼하게' 들리는 얘기다.
3일, 톱스타 원빈과 이나영 커플의 열애 소식이 전해졌다. 이날 오전 한 매체의 보도로 공개된 두 사람의 교제 소식은 관계자들과 네티즌의 폭풍 관심을 받았다. 애초 (교제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소속사는 최초 보도가 나간 직후, 일부 매체를 통해 '열애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사태는 더욱 확대됐다. 원빈이 이나영의 경기도 분당 집에 수차례 드나드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데이트 패턴 등에 대한 취재 내용이 상당히 디테일했기 때문.
'단순한 소속사 식구 사이'라기엔 미심쩍게 보였고 결국 취재진과 네티즌 수사대의 레이더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소속사는 몇 시간이 지난 후 "시작하는 단계다. 알아가는 단계"라는 공식 입장을 다시 냈다. 속사정을 파악해보니 두 사람이 남녀 관계로 교제 중인 것은 맞지만 이제 시작하는, '알아가는 단계'라는 설명이었다.

이번 역시 두 사람은 '알아가는 단계'였다. 이는 앞서 수많은 연예인 커플들이 취했던 입장과 동일하다. 대개 소속사 관계자의 입을 빌리거나, 공식 보도 자료를 통해서 열애 보도나 설에 대한 당사자들의 입장이 전해지곤 하는데, 거의 매번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들어가는 말이 바로 '알아가는 단계'다. 지난 5월 조인성-김민희 역시 한 매체가 데이트 현장 사진을 담은 열애 보도를 내놓자 같은 말을 했다. 지난 1월 비-김태희, 2월 윤계상-이하늬, 4월 토니안-걸스데이 혜리 등 올해 들어서만도 숱한 커플들이 열애 보도에 대한 공식 입장으로 '알아가는 단계'란 말을 빼먹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 모두가 갓 시작한, 이제 막 알아가는 풋풋한 연인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알아가는 단계', '시작하는 단계'라는 공식 입장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이는 연애 당사자들이 대중의 사랑과 인지도로 먹고 사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 아무리 시대가 달라져 자신의 우상의 연애사에 쿨해진 팬들이 늘어났다고는 해도 여전히 많은 팬들에게 있어 '우리 오빠가 여친이 생긴단 건 아니될 말'이다. 열애설이나 뉴스로 순간적인 이슈가 되기는 하지만 공개 연인으로 전환 직후, 연예인들의 인기는 눈에 띄게 수직 하강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당연히 작품 캐스팅이나 광고 모델 발탁 에 있어서도 보이지 않는(?) 변화나 제약이 따른다. '누구의 여자', '아무개의 남자' 식의 수식어가 붙는 순간, 주가가 하락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따라서 '운 나쁘게' 열애 사실이 걸렸다고 해도 이 두 남녀가 오래 묵은 심각한 관계라는 인상은 가급적 주지 않아야 한다. 실상대로 1년 만났다, 3년 만났다, 혹은 결혼까지 계획 중이라고 토로하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이 펼쳐진다. 또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언제 변할지 모르는 것이 남녀 관계인데 괜히 지금 그대로 심각하게 털어놨다가는 남남이 된 훗날, 과거의 연애사가 주홍글씨처럼 두고두고 따라다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가 하면 실제 당사자들의 만남이 애매모호한 상태에 놓여있을 때도 '알아가는 단계'란 말은 최고의 표현이다. 공개 연인이 된 남녀 커플들 중 상당수는 실제 핑크빛 만남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한두 번 만났다가 관계자들의 눈이나 카메라 렌즈에 포착돼 '아직 정식으로 손도 한번 못 잡고' 열애 의혹을 받는 경우들도 왕왕 발생한다. 그리고 몇 차례 만나며 상당히 진한 스킨십까지 나누고 호감을 고조시켰지만 한달도 채 안 돼 관계가 끝나는 일도 있다. 하지만 그 짧은 과정에서 핑크빛 무드가 감지되고 소문이 나거나,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포착되는 운 나쁜 그림이 연출되는 것.
지금은 진짜 사귀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함께 했던 순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자세한 정황이 담긴 기사 보도가 나오면 '무조건 사실무근'이라고 우기기도 힘든 게 또 연예인들의 숙명이다. 자칫 거짓말을 한다며 진실 논란으로 번질 우려가 다분하기 때문.
한 유명 배우의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네 번쯤 만나다가 헤어졌는데, 하필 기사가 났더라. 만날 당시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측근들의 멘트가 하도 자세해 사실이 아니라고 우기기 어려웠다. 양측이 그저 '호감을 갖고 만나보는 단계'로 정리하자고 합의하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던 기억이 지금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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