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에는 홈런이나 타점 도루 부문 1위 타자는 없다. 하지만 선수들 모두가 집중해서 찬스를 만들고 점수를 뽑는다.”
LG 김기태 감독은 지난 2일 반환점을 돈 올 시즌을 돌아보며 타선의 응집력에 만족을 표했다. 소위 말하는 ‘미친 선수’는 없지만, 1번 타자부터 9번 타자까지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를 풀어가기가 수월하다고 했다.
실제로 올 시즌 LG에는 MVP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타자는 없다. 두 자릿수 홈런을 쳤거나 50타점, 20도루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이는 전무하다. 그럼에도 LG 타선은 강하다. 8명의 타자가 타율 2할8푼 이상을 찍고 있고 9명이 20타점 이상을 올리고 있다. 팀 타율 2할8푼, 득점권 타율은 이보다 높은 2할8푼5리다. 이렇게 지뢰밭 타선을 형성하면서 매 경기 새로운 주인공이 탄생한다.

무엇보다 타자들 모두 상황에 맞는 타격을 하고 있다. 때문에 상·하위타선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 김 감독은 “1번 타자로 경기에 나가도 선두타자로 타석에 서는 경우는 1회에 그칠 수 있다. 9번 타자가 선두타자로 나갈 경우에는 9번 타자가 리드오프다. 결국 모든 타자가 출루해서 흐름을 연결시킬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3일 잠실 한화전도 그랬다. 점수를 뽑은 상황을 돌아보면 천금의 출루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날 LG는 2회초 선발투수가 무너지면서 2-7로 흐름을 완전히 상대방에게 넘겨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2회말 곧바로 점수를 뽑으며 흐름을 다잡았다. 5회말에는 만루찬스를 만들었고 이병규(9번)의 싹쓸이 2루타로 7-8, 한화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이병규의 적시타가 컸지만 사실상 분위기를 가져온 것은 정의윤의 몸에 맞는 볼이었다. 상대가 선발투수를 5회에 강판시키고 신인투수를 마운드에 올리는 초강수를 뒀지만 첫 타자 정의윤이 몸에 맞는 볼로 1루를 밟아 만루가 됐다. 이후 적시타는 예고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경기를 뒤집은 7회말도 비슷했다. 마무리투수 송창식을 맞아 정의윤의 좌전안타를 시작으로 또다시 베이스를 가득 채웠는데 이대형과 정성훈의 볼넷 출루가 결정적이었다. 특히 이대형이 7구 승부 끝에 볼넷으로 걸아나간 게 크게 작용했다. 결국 1사 만루서 이병규(7번)의 1루 땅볼과 대타 이진영의 우전 적시타로 승기를 잡았다. 올 시즌 18번째 역전승을 달성한 순간이었다.
LG 김무관 타격코치는 “투수가 가장 흔들리는 경우는 볼넷을 범할 때다. 때문에 볼넷 후 맞이하는 타석에 보다 집중하라고 강조한다”며 “올 시즌 우리 타선의 콘셉트는 출루와 타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LG 타선은 득점권 타율에서 하위권에 자리했다. 그래서 잔루가 많았다. 작년만 봐도 잔루가 1010개나 됐다. 올 시즌 잔루를 50개만 줄여도 팀이 확 달라졌음을 느낄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LG는 잔루 474개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 페이스로 시즌을 마치면 잔루는 950개가 안 된다. 그만큼 타선이 톱니바퀴처럼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30홈런이나 100타점을 기록하는 타자가 없어도 LG의 공격력은 막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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