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권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 선발 투수는 발 빠른 1루 주자를 묶었다. 그러나 타자는 그 허를 찔러 절묘한 번트를 성공시켰고 3루 주자도 재빠른 베이스러닝으로 쐐기점을 이끌었다. ‘잠실 아이돌’ 정수빈(23)의 번트 안타와 3루 주자 김재호(28)의 재빠른 홈 쇄도는 필요한 순간 발야구를 앞세우던 두산 베어스 야구 DNA가 살아있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두산은 5일 잠실 삼성전서 김현수의 2홈런 5타점 등을 앞세워 막판 이승엽의 만루포 등으로 추격한 상대를 9-6으로 제압하며 삼성전 3연패를 끊었다. 선발 더스틴 니퍼트의 6이닝 1실점 호투와 김현수의 맹타, 오재원의 호수비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경기 승부처에서 터진 정수빈의 스퀴즈 번트 안타와 3루 주자 김재호의 주루도 분명 주목할 만 했다.
직전 상황을 복기해보면 4회말 1사 후 김재호와 이종욱이 연속 우전 안타로 1,3루 기회를 만들었다. 상대 선발 배영수는 이중 도루를 막고 발 빠른 이종욱의 움직임을 묶기 위해 잇달아 견제구를 던졌다. 0-3으로 뒤지고 있었으나 아직 추격권에서 벗어나지 않은 만큼 중반 이후 추격을 위해 배영수가 이종욱을 묶은 것이다.

이는 배영수가 이 순간을 경기 승부처로 보았음을 의미한다. 잘 되면 병살, 제대로 되지 않아 1점을 내주더라도 가능한 실점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기 위한 노력. 그러나 배영수가 연달아 견제를 하면서 1루수 채태인이 베이스를 비우지 못하고 근처에 머무르다가 번트 전진 수비를 펼쳐야 했다.
그 순간 정수빈이 빠른 발을 앞세워 뛰어난 작전 수행 능력을 펼쳤다. 번트 타구도 마침 투수 배영수와 1루수 채태인, 포수 진갑용 사이 애매한 삼각지대 같은 곳에 떨어졌다. 어설프게 떨어졌더라면 김재호의 횡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3루에 있던 김재호의 스타트 자체가 좋았던 만큼 가장 빨리 다가가 공을 잡은 배영수는 홈 접전을 포기하고 1루로 던졌다. 2루수 김태완의 베이스커버가 느리지는 않았으나 타자주자 정수빈의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이 좀 더 빨랐다.
이 스퀴즈 번트 안타로 4-0을 만든 두산은 김현수의 쐐기 스리런으로 7-0을 만들었다. 8회 삼성이 이승엽의 만루포 등으로 추격했음에도 9-6 승리를 거둘 수 있던 데는 김현수의 홈런포도 컸지만 승부처에서 나온 김재호-정수빈의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났던 점을 주목할 만 했다. 정수빈은 투수와 1루수 사이 애매한 곳으로 번트를 잘 떨어뜨렸고 김재호는 주저없이 홈을 파고 들었다.
2000년대 후반 두산은 상대 수비가 생각하는 이상의 과감한 주루와 작전 수행 능력을 통해 시즌 전 예상을 깨고 포스트시즌 컨텐더로 자리 잡았다. 비록 SK에 막혀 패권을 거머쥐는 데는 실패했으나 안정된 수비력을 기초로 한 뒤 상대의 수를 뛰어넘는 주루와 작전 수행 능력, 팀 배팅을 앞세워 관계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빠르고 영리했던 두산의 4회말 쐐기 득점 과정은 2007~2008시즌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던 당시의 두산 야구를 다시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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