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윤석환 전 투수코치 이후 국내 투수로는 한 시즌 10승 투수가 없었다. 외국인 투수까지 포함해도 2004시즌 게리 레스가 마지막. 나름대로 투자도 했고 중간에서 고생한 투수는 있었으나 정작 좌완 선발은 확실히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젊은 흑마구 투수가 나타났다. ‘유희왕’ 유희관(27, 두산 베어스)이 두산의 국내 좌완 선발 수맥을 끊고 있다.
유희관은 6일 잠실 삼성전 선발로 나서 7⅓이닝 동안 6피안타(1피홈런, 탈삼진 3개, 사사구 2개) 1실점으로 호투하며 34일 만에 시즌 4승 째를 수확했다. 7⅓이닝은 유희관의 프로 데뷔 후 한 경기 최다 이닝 소화다.
1988년 윤석환이 13승을 거둔 이후 두산의 국내 좌완이 한 시즌 10승 이상을 거둔 전례는 없었다. 레스가 2002년 16승, 2004년 17승을 거두며 좌완 에이스로 활약했으나 그는 1년 씩 다시 계약을 치러야 하는 외국인 투수 입장이었다. 1999년부터 좌완 계투로 종횡무진하며 깜짝 선발로도 활약한 이혜천은 2001년 9승, 2006시즌 8승(6패) 밖에 거두지 못하는 박복한 가운데 평균자책점 2.79로 활약했으나 정작 10승 고지는 밟지 못했다.

거듭된 좌완 가뭄 끝 두산은 2009시즌 후 히어로즈에 좌완 금민철에 현금 10억원을 보내고 그해 13승을 올린 이현승을 영입했다. 이현승은 당시 김경문 감독이 현대 시절부터 탐냈던 유망주. 그러나 팔꿈치 부상과 어깨 부상이 이어지며 이현승도 두산이 원한 좌완 선발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뒤늦은 병역 의무를 이행 중이다. 2008년 1차 지명 진야곱은 첫 한 시즌 반 동안 씩씩하게 던지다 허리 부상 후 현재 경찰청에 복무 중이다.
2010년 1라운드로 지명된 207cm 장신 좌완 장민익은 공익근무로 병역을 이행하며 다음을 노리고 있다. 그해 3라운드 정대현은 지난해 롱릴리프 및 추격조로 분전했으나 아직 만개하지 못했다. 수준급 야수는 많이 배출되었으나 정작 간절했던 좌완 유망주는 화수분 입구에서 제대로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못 본 두산이었다.
올해는 다르다. 롱릴리프로 데뷔 첫 개막 엔트리 영광을 안은 유희관이 25경기 4승1패1세이브3홀드 평균자책점 2.60을 기록하며 어느새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구축했다. 직구 구속은 평균 130km대 초반으로 느린 편이지만 스트라이크 존 모서리에 공을 꽂을 수 있는 제구력. 그리고 완급조절형 변화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타자를 혼동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일본 미야자키 전지훈련 당시 유희관의 기교투를 지켜본 한 일본 구단 관계자는 “커리어를 많이 쌓은 베테랑 투수인가 봅니다”라고 했다가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투수라는 답변에 엄청 놀랐다. 그만큼 유희관의 투구는 풀타임 첫 시즌 투수답지 않게 농익었다.
아직 시즌은 길다. 선수 본인도 “한 시즌 내내 꾸준히 성적을 올리고 팀에 공헌해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아직 더 노력해야 한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유희관이 국내 좌완 투수 고갈로 인해 힘겨워하던 두산에 단비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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