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 좌완투수 클레이튼 커쇼(25)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 가운데 한 명이다. 2011년 내셔널리그 사이영 상 수상자이기도 한 그는 메이저리그 역대급 좌완투수 계보이 이름을 올릴 재목으로 기대받고 있다.
올 시즌 성적 역시 훌륭하다. 19경기에 선발로 출전, 138⅓이닝을 던지며 8승 5패 평균자책점 1.89를 기록하고 있다. 양대리그를 통틀어 유일한 1점대 평균자책점 투수이자 이닝 역시 단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승운이 조금 따르지 않았지만 최근 3연승을 달리며 부지런하게 승리도 쌓고 있다.
마운드 위에서 커쇼의 경기 지배력은 최고다. 그렇다면 타석에 선 커쇼는 어떨까. 사실 커쇼는 결코 타격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는 선수다. 메이저리그 6년 통산 타율 1할4푼9리(303타수 45안타) 1홈런 12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투수들의 평균적인 타격 성적과 비슷한 커쇼는 올 시즌 처음으로 홈런을 신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커쇼는 배터박스에 들어가면 누구보다 진지하게 타격에 임한다. 어떤 투수는 성의없이 방망이를 휘두르다가 내려오지만 커쇼는 공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어떻게든 출루하고자 한다. 커쇼가 타격에 집중하지 않고 그냥 아웃되는 건 팀이 크게 앞서고 있을 때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투구에 좋은 리듬을 이어가는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8일(이하 한국시간) 벌어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타격에 나선 커쇼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커쇼는 8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시즌 8승을 챙겼는데 타석에서는 2타수 무안타 볼넷 1개만을 얻었다. 눈에 띄지 않은 성적일 수 있지만 타석에서의 집중력 만큼은 일품이었다.
선발 채드 고딘을 상대로 커쇼는 첫 타석에서 4구만에 유격수 땅볼, 두 번째 타석에서 공 5개를 보고 삼진을 당했다. 그리고 8회, 커쇼는 샌디 로사리오와 끈질긴 8구 승부를 벌인 끝에 볼넷을 얻어냈다. 1-1 동점 상황인데다가 투구수는 100개, 9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야 했지만 커쇼는 파울 3개를 커트해내며 투수를 압박했고 결국 볼넷을 골라냈다.
이 볼넷으로 커쇼는 로사리오를 마운드에서 끌어 내렸다. 비록 다음 타자인 칼 크로포드가 범타로 물러났지만 커쇼는 크로포드의 파울볼이 나올 때마다 전력으로 베이스러닝을 했다. 마치 대주자로 8회 투입된 선수처럼 리드를 하고 타격음이 들리면 2루를 향해 뛰었다. 에이스의 그러한 헌신에 야수들은 9회 3득점으로 화답, 커쇼는 시즌 8승을 챙길 수 있었다.
경기 후 커쇼는 '왜 이렇게 타격을 열심히 했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런 그의 대답에서 '승리투수가 되기 위해'라는 말은 없었다. 다만 그는 "난 경기에서 팀의 아홉 번째 타자다. 어떻게든 살아 나가야 한다. 투수라고 타격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커쇼는 기량 뿐만 아니라 야구선수로서 정신력까지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선수임에 틀림없다.
<사진> 샌프란시스코=곽영래 기자,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