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표류하는 양상까지 보였던 SK의 불펜이 서서히 안정감을 찾고 있다. 하지만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다. 팀 상승세를 뒷받침하려면 좀 더 견고한 라인 구축이 필요하다. 결국 진해수(27), 윤길현(30), 박정배(31)로 이어지는 필승조 라인이 마무리 박희수까지의 든든한 가교를 놓아야 한다.
SK의 불펜은 올 시즌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해왔다. 마무리 박희수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모든 구상이 꼬였다. 지난해 마무리였던 정우람의 군 입대, 그리고 핵심 불펜 요원이었던 엄정욱의 부상 공백이 커 보였다. 후방에 믿을 만한 선수들이 마땅치 않다보니 선발투수들을 조금 더 끌고 가는 양상도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선발은 힘이 떨어지고 불펜은 사기가 떨어졌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SK 불펜은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이기는 경기에서 뒤집히는 일은 최근 들어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 중심에는 박정배가 있다. 어깨 재활을 마치고 1군에 복귀한 박정배는 7경기에서 10⅓이닝을 던지며 1승2홀드 평균자책점 0.87을 기록 중이다. 거의 완벽한 성적이다. 승부처에서 상대 공격 흐름을 막아낸 가치까지 더한다면 영웅적 피칭이었다.

박정배 효과는 기록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박정배의 올 시즌 첫 경기는 6월 16일 광주 KIA전이었다. SK 불펜은 그 전과 그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6월 15일까지 SK 불펜 투수들의 성적은 5승8패1무13세이브12홀드, 평균자책점 5.19였다. 평균자책점은 리그 7위였다. 그러나 6월 16일 이후로는 확 달라졌다. 3승무패5세이브2홀드, 평균자책점 3.35다. 블론세이브도 없었고 동기간 불펜 평균자책점은 넥센(2.24)에 이어 리그 2위다.
박정배의 가세는 이만수 SK 감독의 마운드 운영 구상에도 숨통을 열어줬다. 박정배 박희수는 모두 1이닝 이상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일단 7회 1·2사까지만 가면 두 선수가 뒷문을 걸어잠글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설 수 있다. 때문에 힘이 떨어진 선발투수를 조금 일찍 내리고 불펜을 한 템포 빨리 가동하는 전략이 가능해졌다. 장기적으로는 선발투수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박정배가 판을 깔았다. 그러나 홀로 불펜을 운영할 수는 없다. 이 구상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진해수와 윤길현의 활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진해수는 현재 SK 불펜 투수 중 유일한 왼손 투수다. 여기에 빠른 공을 던지는 왼손 투수라는 희소성이 있다. 제구가 문제로 지적되곤 하지만 어차피 자신이 이겨내야 할 문제다. 이만수 SK 감독은 “제구만 되면 구위 자체를 볼 때 2이닝도 막아줄 수 있는 선수”라고 자신했다.
SK의 새로운 필승조로 자리한 윤길현도 중요한 선수다. 윤길현은 2군에 다녀온 뒤 제구가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깥쪽으로 형성되는 직구와 전매특허인 슬라이더의 조합은 능히 1이닝 이상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비슷한 유형의 투수로 전유수 이재영도 대기하고 있지만 필승조 경험은 아무래도 윤길현이 더 많다. 자신에 대한 공에 자신감을 찾을 수 있다면 더 좋은 구위도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 구위가 살아나는 추세인 전유수 이재영이 돌아가며 박정배 앞의 셋업맨 몫을 수행할 수 있다면 SK 불펜도 구색이 잡힌다. 추격하는 경기의 롱릴리프로는 2군에서 제구를 다듬고 다시 올라온 문승원이 기대주다. 최근 2군에서 피칭을 재개한 채병룡도 잊어서는 안 될 선수다. 적어도 지금처럼 앞선 경기에서라도 제 몫을 해준다면 SK 마운드에도 충분한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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