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통속극은 출생의 비밀, 불륜과 패륜, 음모와 술수, 복수와 용서로 대변된다. 여기에 억지스러운 설정에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이 한데 모이면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가 된다.
그 어느 때보다 막장 드라마가 인기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효시였던 임성한 작가의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공주’는 물론이고 요즘 웬만큼 시청률이 나오는 드라마 중에 막장 드라마가 아닌 드라마가 드물다.
그야말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욕드)의 전성시대다. 드라마를 살펴보면 작품의 얼개와 완성도를 포기하고 높은 몰입도를 위해 자극적인 설정을 마구잡이로 집어넣는 형국이다.

상반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중 막장 드라마가 아니었던 드라마를 찾는 게 더욱 쉽다.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 정도가 높은 시청률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배우 수애를 전무후무한 악녀로 만들었던 SBS ‘야왕’과 국수집 이야기를 내세웠지만 막장 시어머니의 포악스러운 말과 행동이 강렬했던 MBC ‘백년의 유산’, 어색한 연기와 오렌지주스를 먹다가 뱉는 장면으로 인터넷을 한바탕 뒤집었던 MBC ‘사랑했나봐’ 등 하나하나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막장이 간다’고 조롱을 당했던 MBC ‘오자룡이 간다’와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인물 설정으로 욕을 먹고 있는 KBS 2TV ‘최고다 이순신’까지 웬만한 인기드라마는 막장 타이틀이 붙었다. 최근에는 MBC 주말드라마 ‘금나와라 뚝딱’도 악녀 이수경이 전면에 배치되면서 막장 드라마 대열에 올라섰다. 이 같은 막장 드라마의 범람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경쟁 속에 어떻게든 드라마를 띄워야 하는 제작진의 피치 못할 선택으로 여겨지고 있다.
작품성과 인기를 모두 사로잡을 수 없다면 인기라도 얻겠다는 심산으로 어이없지만 그래서 재밌는 설정들을 매 회 집어넣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언제나 가족애로 포장해 체면치레는 하려고 시도한다. 참신한 기획과 높은 완성도의 드라마를 성공시키는 것보다 눈 찔끔 감고 자극적인 전개로 시청자들을 끌어안는 것이 소위 말하는 돈이 되는 장사이기 때문.
시청자들 역시 이 같은 막장 드라마를 꾸준히 시청하면서 짜증 유발 드라마가 나올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년에 1~2편, 많아야 2~3편이 막장 드라마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것에 비해 요즘 방송가는 막장 드라마가 난무한다. 정말 슬픈 현실이다.
오죽하면 막장 드라마의 신기원을 열었던 임성한 작가의 독특한 설정과 상황들이 이제는 전혀 놀랍지 않다는 시청자의 반응도 목격된다. 임성한 작가의 전작에 비해 ‘오로라공주’에 대한 비난의 수위가 낮은 것도 그만큼 안방극장이 막장 전개에 면역이 됐다는 것을 방증한다. 막장 드라마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2013년 방송가, 이쯤 되면 막장 드라마도 한국 드라마의 슬픈 흐름이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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