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 월드'가 초반 비판을 잠재우고 철벽을 단단히 하고 있다.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공주'에 대해 폭풍처럼 불거졌던 초반의 비판은 많이 수그러러진 편이다. 드라마가 가족 경제의 몰락이라는 2막에 돌입하면서 '재미있다' 흥미진진하다'란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이 현재의 분위기.사실 임성한 작가는 하나 같이 똑같은 말투의 인물들, 종종 맥을 끊어놓는 잡스러운 이야기들, 복잡하게 꼬인 관계(겹사돈 등), 무속인, 황당 상상신이나 예능스러운 자막 등으로 드라마계의 '새 지평'(?)을 연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 지점에서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임성한 작가의 본인에 대한 인식이다. 그는 과연 작품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독특한 면을 인지하고 있을 것일까? 혹시 '막장드라마의 선두 주자'라는 오명을 즐기는 것은 아닐까?
임성한 작가는 적어도 자신이 막장 작가라 불리고 자신의 작품들이 막장으로 때로 조롱을 받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임성한 작가는 막장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영리하게 풀어냈는데 얼마 전 '오로라 공주'에서는 과연 '착한드라마'란 개념이 무엇이냐'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과연 막장이라 폄하되는 '오로라 공주'가 착한드라마라 칭송받는 경쟁작 SBS '못난이 주의보'와 얼마나 다른가를 꼬집은 것이다.
장면은 이랬다. 오로라(전소민)을 담당하는 분장팀장이 일을 하던 도중 동료들에게 자신이 즐겨보고 있다는 드라마 얘기를 꺼낸다. "얼마 전에 여주인공 아빠가 재혼했는데 친구 딸과 했다. 남자 주인공은 산전수전 다 겪었다. 남자 주인공 아빠는 교도소 드나드는 잡범인데 첫사랑과 다시 만난다. 여자가 간호사인데 의사 남편 죽고 첫사랑 남자와 재혼한다. 보다 보면 눈물 나고 힐링 된다. 좀 있으면 남자주인공 출생비밀 나오겠더라. 형제간 삼각관계. 기자들도 착한 드라마라고 난리다"라고 말한다. 마지막 일침. "그런 착한 드라마를 봐야 해. 막장 보지 말고."
이를 계속 난감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동료들은 "언니는 영혼이 맑아서 몰입이 잘 되나 보다"고 맞장구 치는 시늉을 하며 비아냥거렸다. 이 모습은 임 작가이 요즘 시청자들과 미디어에 던지는 자신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또 임성한 작가는 스스로 '품위'에 대한 집착이 없어 보인다. 얼마 전 '오로라 공주'에는 요즘 유행하는 비속어가 등장해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극 중 박지영(정주연)은 왕여옥(임예진)에게 "오늘 오로라 개웃겼다"라고 말하는 가하면 오로라는 자신을 괴롭히는 드라마 감독을 "양아"라 칭했다.
적어도 임성한 작가는 고집있는 스타 작가다. 비판의 수용이 지나쳐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작가의 경우도 있는데, 오히려 '신기생뎐'에는 납량특집 공포드라마가 아닌데도 등장인물의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 등장했다. 이만하면 실험극이다.
가족극이란 장르 안에서 본인이 선호하는 코드를 계속 변주시키고, 시험하고, 이를 즐기는 듯한 그를 두고 B급 영화 감독 같다는 이들도 있다.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작가 스스로 지향하는 바가 분명하고 자신의 취향에 대한 자신이 있다면 그것 또한 존중해 줄 만 하다. 적어도 '느려 터진 전개', '분명치 않은 성격의 캐릭터' 등의 비판은 받지 않는 임성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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