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재의 하이브리드 앵글] 기성용 '경고→납득'이 아닌 '사과→용서'가 우선
OSEN 이균재 기자
발행 2013.07.10 15: 10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다. 처음엔 조그만 잘못을 저지르다가 나중엔 큰 잘못도 예사로 저지르게 된다는 뜻이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논란을 일으킨 기성용(24, 스완지 시티)의 경우가 꼭 그렇다.
대한축구협회는 10일 기성용에게 징계 대신 엄중 경고 조치를 취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협회의 안일한 처사에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여론의 분노는 빗발치고 있다. 협회가 이번 조치로 사건에 종지부를 찍으려 했다면 최소한 최강희 전 A대표팀 감독에 대한 기성용의 사과를 받아낸 뒤에 하는 게 수순이었다. 시즌을 준비 중인 기성용이 직접 사과를 못한다면 전화로라도 진심어린 사과를 했어야 했다. 협회가 엄중 경고 조치 대신 이러한 조치를 먼저 취했더라면 기성용에게 부정적인 여론도 다시 돌아섰을 터다. 하지만 협회의 섣부른 결정으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더불어 한국 축구는 향후 또 다른 SNS 불상사 여부에 노심초사하게 됐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기성용은 지난달 1일 자신의 트위터에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건 리더 자격이 없다"고 남겼다. 최강희 전 축구 대표팀 감독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혹이 일자 기성용은 교회 설교에서 나온 말씀이라며 수습에 나섰지만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이에 최 감독은 지난 3일 한 매체와 인터뷰서 "용기가 있으면 찾아와야 한다. 그런 짓은 비겁하다. 뉘앙스를 풍겨서 논란이 될 짓은 하면 안 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기성용은 기사가 나온 3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폐쇄했다. 시작에 불과했다. 4일 기성용의 비밀 SNS 계정이 공개가 되면서 최 감독을 향한 그의 조롱 섞인 말들이 세상에 나왔다. 기성용은 5일 그의 에이전시를 통해 사과문을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9일 비밀 SNS에 새 글과 사진을 게재하면서 꺼져가던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결국 그는 비밀 SNS 계정조차 삭제했다.

협회는 10일 오전 기성용의 문제를 놓고 임원 회의를 열었다. 협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선수 관리 책임에 대해 사과의 말을 전하면서 "물의를 일으킨 기성용은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혀 왔으며, 국가대표팀에 대한 공헌과 그 업적을 고려해 협회 차원에서 엄중 경고 조치하되, 징계위원회 회부는 하지 않기로 했다. 향후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표선수로서의 책임과 소임을 다하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대표팀 운영규정을 보완하는 등의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10일 OSEN과 전화 통화에서 "기성용 본인이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기 때문에 협회는 그의 진정성을 받아들인다"라며 "최 전 감독님도 직간접적으로 사과를 받아 주는 발언을 했다. 우리는 그 문제보다는 협회의 선수 관리 문제에 대해 미흡하고 책임을 지지 못한 것에 사과의 말을 표시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논의가 많이 진행이 돼 왔다"고 설명했다.
협회의 이번 처사는 '무지한'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쇠' 격인지 도통 모를 일이다. 지난 5일 밝힌 기성용의 사과문은 돌이켜봤을 때 진정성에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저는 앞으로 더욱 축구에 전념하여 지금까지 보여주신 팬들과 축구 관계자 여러분의 걱정을 불식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사과했지만 그는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문제의 비밀 SNS에 "누가 그랬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가끔은 이성과 냉정 사이 미숙한 감정이 터질 것 같아 가슴 조일 때도 있고 감추어둔 감성이 하찮은 갈등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쁜 숨을 쉬기도 한다. 특별한 조화의 완벽한 인생 화려한 미래 막연한 동경. 누가 그랬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거다.'는 이석희의 '누가 그랬다'라는 시를 올렸다. 잠잠해지던 여론은 다시 들끓었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고 용서하기엔 이미 너무 먼 곳을 와버린 뒤였다. 
하지만 협회는 이날 허정무 부회장을 통해 "명확한 수칙이 부족했다. 문제의 책임은 협회에 있다"면서 경고 조치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몇년 전부터 축구선수들 사이에서 SNS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을 모를리 없을 터. 정 규정 손실이 늦었다면 지금이라도 '기성용 특별법'이라도 만들었으면 됐다. 협회의 이번 처사는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친 격이다. 심히 걱정되는 부분은 이번 솜방망이 처벌의 후폭풍이다. 향후 기성용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이 비슷한 논란을 일으키지는 않을지 그리고 협회가 또 어떤 주먹구구식의 대처법을 내놓을지다.
협회의 이번 조치는 기성용에게도 한국 축구에도 득될 것 없다. 협회의 경고 조치로 인한 납득이 아닌 기성용의 진심어린 사과에 의한 용서의 그림이 먼저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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