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현정은 MBC 수목드라마 ‘여왕의 교실’에서 주인공이면서도 주인공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마여진이라는 억압적인 교사에게 맞서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때문에 고현정의 이야기보다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집중돼 있다. 고현정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아이들을 통제하고자 표정이 없는 여진을 연기하며 매순간 결정적인 연기 한방을 보여주는 듯한 인상을 안긴다.
지난 11일 방송된 ‘여왕의 교실’ 10회는 착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심하나(김향기 분)의 노력 끝에 이기적이었던 아이들이 똘똘 뭉쳐 처음으로 여진에게 한 목소리를 내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그동안 아이들을 경쟁이라는 체제 속에서 억압하고 짓눌렀던 여진은 자신의 수업방식을 거부하는 아이들의 행동에 미묘한 표정 변화를 보였다. 언제나 차갑고 무표정했던 그가 흔들리는 눈빛 속 지은 옅은 미소는 안방극장에 큰 여운을 남겼다.

여진은 경쟁을 부추기고 아이들간의 반목을 조장했던 ‘비교육적인 교사’였다. 동시에 언제나 아이들의 속내를 꿰뚫고 철두철미한 교육방식을 고수하며 흔들림 없이 길을 제시하는 의문스러운 교사이기도 했다. 때문에 자신의 교육방식에 반기를 드는 아이들의 행동에 만족스러운 듯 살짝 비친 미소는 시청자들에게 '겉치레가 아닌 아이들만 생각하는 진짜 교사를 마주했다'는 기쁨과 감동을 안겼다.
이 과정에서 고현정의 섬세한 표정 연기는 일품이었다. 이 드라마는 아이들의 성장기를 다루는데다가 여진이 워낙 베일에 감춰진 까닭에 고현정에게 빛이 쏟아지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고현정은 아역 배우들이 매회 열연을 펼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하면서도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는 것에는 실패하지 않는 영악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
무표정인 여진이라는 인물은 사실 표정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인물. 때문에 얼굴로 모든 감정을 전할 수 있는 노련한 배우 고현정의 연기는 짧은 순간 펼쳐져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매회 잠깐 등장하는 그의 표정 변화에 시청자들이 주목하고 감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열이나 고성 등 연기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기 쉬운 소위 센 장면이 아닌 잔잔한 장면에서도 연기력과 배우로서 존재감이 빛나는 것. 고현정은 초반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면 갈등이 폭발한 중반을 넘어 봉합한는 후반부로 향해가면서 절묘하면서도 섬세한 감정 연기로 '고현정의 교실'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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