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난투사](28)‘레전드 2루수’ 박정태와 박종호, 그라운드 정면충돌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3.07.16 10: 58

1990년대에는 일본 프로야구 판에도 심심하면 그라운드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당시 요시쿠니 이치로 일본야구기구(NPB) 커미셔너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좌선(坐禪)’을 권유하는 일까지 있었을까.
1990년 5월 29일치 일본 기사에 따르면 ‘요시쿠니 이치로(73) 커미셔너가 유니크한 좌선을 권유하고 나섰다. 폭행, 퇴장사건 등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는 최근 야구계를 염려한 나머지 경직된 마음을 풀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각 구단에 좌선을 권유하게 됐다.’는 것이다.
경기가 격화되다 보면 그 어디라 할 것 없이 충동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야구에서 특히 시비가 쉽게 발화(發火)할 수 있는 곳이 바로 2루다. 1루 주자가 더블플레이를 모면하기 위해 발을 쳐든 위협적인 자세로 짓쳐 들어가기 때문에 상대팀 유격수나 2루수와 충돌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1997년 7월 22일에 부산 사직구장에서 일어났던 당대의 최고 2루수 롯데 박정태(당시 28살)와 LG 박종호(당시 24살)의 정면충돌도 바로 그런 흐름에서 나왔다. 
양 팀 간 시즌 10차전이 열렸던 그날 사직구장에는 유료관중이 3952명에 불과했다. 그해는 롯데가 맨 꼴찌를 면치 못하는 등 본격적인 침체기에 들어가는 해였다. 부산 관중들도 이미 시들해져 가고 있었다. 에이스 주형광의 부진, 노장 윤학길의 퇴조, 계약금 5억 원의 대형 신인 손민한이 초장부터 어깨부상을 호소하고 문동환도 팔꿈치 부상을 당하는 등 마운드가 부실했다. 특정 선수의 ‘나홀로 투혼’ 만으론 침몰해가는 팀을 구출해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박정태의 투혼도 소용이 없었다.  
4회 초 LG 공격. 1사 1, 2루에서 1루 주자였던 박종호가 1번 유지현의 유격수 앞 땅볼 때 더블플레이를 막기 위해 발을 쳐들고 2루로 슬라이딩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롯데 2루수 박정태가 박종호를 글러브로 내리치며 아웃시키자 발끈한 박종호가 박정태를 떼밀어 버린 것이다.
박정태는 곧바로 박종호의 안면을 주먹으로 쳐 분풀이를 했다. 그 순간, 양 팀 선수들이 일제히 덕 아웃을 박차고 뛰쳐나와 그라운드에서 서로 뒤엉켜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그 와중에 LG 투수 송유석(당시 31살)이 박정태를 향해 달려가  그대로 주먹을 날려 난투극 일보직전까지 가는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했다.
상황이 험악해지자 심판진은 싸움을 뜯어말리는 한편, 박정태와 송유석을 나란히 퇴장시켜 현장을 수습했다.
이 소동으로 하오 8시 3분께부터 중단된 경기는 8분 뒤인 8시 11분께에야 속개됐다. 경기는 롯데가 6-5로 승리했지만 그해 처음으로 집단 몸싸움을 벌여 양 팀 선수가 한 명씩 퇴장 당하는 불상사를 남겼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그 이튿날인 23일에 곧바로 상벌위원회를 열어 시즌 선수 퇴장 1, 2호가 된 박정태와 송유석에게 각각 제재금 100만 원과 150만 원의 징계를 내렸다. 제재의 이유로 박정태는 ‘상대선수 구타, 퇴장’, 송유석은 ‘시비 당사자가 아닌 선수가 상대 선수 구타, 퇴장’ 을 들었다.
 
박정태와 박종호는 한국 프로야구사에 의미 있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명 2루수였다. 2000년에 타격 1위에 올랐던 스위치 히터 박종호는 1994년과 2000, 2004년 3차례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탔다. 무엇보다 박종호가 세운 39게임 연속안타 기록은 한국 프로야구 연속경기 안타 최다 기록(2003년 8월 29일~2004년 4월 21일)으로 공교롭게도 박정태의 종전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박정태는 자타공인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2루수’이다. 1998, 1999년 이태 연속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로 빛났던 그는 1991, 1992, 1996, 1998, 1999년 등 역대 2루수 가운데 가장 많은 5차례의 골든글러브 수상자이다.  박정태는 연속경기 안타 2위 기록(31게임. 1999년 5월 5일~1999년 6월 9일)을 지니고 있다.
신, 구 2루수의 그라운드 격돌은 한국 프로야구사에 한 얼룩으로 남았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LG의 4회 초 공격 때 2루로 발을 쳐들고 들어가던 박종호(가운데)를 롯데 2루수 박정태(주형광에게 가린 선수)가 글로브로 내리치자 박종호가 상대를 떼밀어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장면. (제공=일간스포츠)
박정태와 박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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