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해서 사람들도 만나지 않아".
김응룡 한화 감독은 두문불출중이다. 한화는 리그 최하위에 빠져있다. 8위 NC에게는 6경기차로 밀려있다. 이 말은 곧 탈꼴찌 가능성이 그리 크다지 않다는 것이다. 1982년 말 해태지휘봉을 맡은 이후 김응룡 야구가 수모를 당한 경우는 없었다.
2000시즌을 마치고 삼성으로 옮겨 2002년 10번째 우승을 달성하고 지휘봉을 선동렬 감독에게 물려준 뒤 2005년 삼성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였다. 야구감독으로 천수를 다했던 김응룡 감독이었다. 그런데 돌연 작년 말 한화 지휘봉을 잡고 8년만에 현장에 복귀했다. 야구계는 충격, 그 자체였다.

김응룡 감독의 현장 복귀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가장 큰 관심은 성공여부였다. 그러나 8년의 공백, 그리고 에이스 류현진이 빠진 한화의 전력을 볼때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전망이었다. 전반기를 끝나는 시점에서 전망은 들어맞았다.
늘상 이기는 경기만 해왔던 김응룡 감독에게 진다는 것은 죽기보다 힘든 고통이었다. 그것도 헤어날 수 없는 수렁과도 같은 최하위였다. 그는 서울의 집도 가지 않고 대전의 숙소에 머문다. 원정을 나서는 대구나 광주에는 지인들이 많다. 특히 광주는 지금도 맘만 먹으면 만날 사람이 수두룩하다.
지난 16일 광주구장에 나온 "일절 만나지 않는다. 전화와도 됐다고 한다. 창피한데 뭐하러 만나노"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이유는 성적이었다. 전장에서 맨날 지는 장수가 무슨 사생활이냐는 것이다. 이날은 허리까지 다쳐 복대를 메고 나왔다. 즐겨찾던 산도, 즐기던 음식도 그에게는 사치였다. 전반기 평가도 짧게 내놓았다. "타격도 그렇고 투수도 그렇고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김감독은 덕아웃에서도 두문불출했다. 경기를 하면 담당기자를 비롯해 취재기자들이 덕아웃에서 감독을 기다린다. 이것저것 팀 운영이나 선수들의 컨디션을 물을 수 있는 자리이다. 그러나 김감독은 자주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손자 뻘되는 기자들과 농담을 주고 받기는 연령 차이가 큰데다 매일 부진한 경기를 펼치다보니 이야기 거리도 없었다.
젊은 감독시절 기자들과 어울릴때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그였다. 언제나 승장이었고 갑이었다.. 그를 취재하기 위해서 기자들은 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8년만에 현장에 돌아온 노옹 감독에게는 단 1승이 너무도 필요하다. 아마도 야구인 김응룡은 자신의 야구인생에서 가장 간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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