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45) 넥센 감독은 전반기를 돌아보며 선수들에게 “고맙다”라고 했다. 비단 뛰어난 활약을 펼친 주축 선수들에게만 돌리는 인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음지에서 묵묵히 땀을 흘리며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한 ‘숨은 영웅’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컸다.
염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다소 파격적인 행보를 선보였다. 주전 선수들을 일찌감치 정했다. 주전 선수들의 결정을 최대한 미루며 경쟁 구도를 유도하는 타 팀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염 감독은 몇몇 우려에도 불구하고 “비주전으로 분류된 선수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했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확신에 찬 어조였다.
그렇다면 전반기가 끝나가는 현 시점, 당시 염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한 선수들은 어떤 모습일까. 의기소침하거나 좌절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임무를 명확히 안 백업 선수들은 넥센이라는 차를 뒤에서 밀며 팀의 호성적을 이끌었다. “선수층이 두껍지 못하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넥센은 이런 평가를 점차 지워가며 16일 현재 41승31패1무(승률 .569)라는 좋은 성적으로 전반기 3위를 확보했다.

이런 성적에 대해 염 감독은 “내가 준 임무를 백업 선수들이 잘 실천한 덕”이라며 “고맙다. 이런 것이 바로 팀워크다”라고 숨은 영웅들을 조명했다. 염 감독은 “불만을 가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백업 선수들이 너무 열심히 했다. 자기 위치에서 자기 임무를 잘 실천했다”고 공헌도를 높게 평가했다. 이런 선수들이 없었다면 넥센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실제 넥센은 몇몇 악재에 시달렸다. 팀 안팎에서 여러 구설수가 있었다. 여기에 부상자도 생겼다. 부동의 리드오프였던 서건창이 부상으로 이탈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섰다. 염 감독의 ‘임무’를 받고 기회를 기다렸던 문우람이 다시 한 번 떠올랐고 당초 염 감독의 ‘보험’ 정도로 여겨졌던 김지수도 나름대로의 몫을 했다. 희망을 잃지 않고 버텼던 백업들 덕에 넥센은 하락세를 최소화하며 전반기를 마칠 수 있었다.
빛나지 않은 불펜에서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한 선수들도 염 감독이 주목하는 ‘숨은 영웅’들이다. 이정훈(36)과 이보근(27)이 대표적이다. 염 감독은 “우리는 특출난 셋업맨이 없다. 그러나 각자 맡은 임무에서 최선을 다했다”며 두 선수를 손꼽았다. 두 선수는 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서 많은 이닝을 던졌다. 이정훈은 34경기, 이보근은 23경기에 나섰다. 성적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지만 필승조 못지않은 공헌도를 선보였다.
염 감독은 “이 선수들이 ‘당연히 해야죠’라고 말하더라. 고맙더라. 실제 선수들에게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다”면서 “팀을 생각하는 선수들의 마음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라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넥센이 팀워크라는 해법을 찾아가고 있는 가운데 염 감독은 “이런 선수들을 더 챙겨주고 싶지 않겠느냐”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염 감독이 챙겨주고 싶은 선수가 더 많아질 수록 넥센은 강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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