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세 번째 할리우드 작품이다. 영화 ‘지.아이.조’를 통해 할리우드에 발을 내디뎠던 배우 이병헌은 이제는 어느 정도의 여유로움까지 엿보였다. 그리고 그 여유로움은 작품 속에서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 ‘레드:더 레전드(이하 ‘레드2’)’에서 어딘가 2% 부족한 허당 킬러 한 역을 맡아 레전드급 할리우드 배우들 속에서도 기죽지 않은 채 스크린을 종횡무진 하는 것.
하지만 그런 그도 미국식 코미디 ‘레드2’ 캐스팅이 확정됐을 때 많은 걱정이 있었다고 했다. ‘과연 내가 미국식 코미디를 몸에 익혀 관객들을 웃길 수 있을까’가 그의 가장 큰 화두였다고. 지난 16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만난 그에게 이제는 좀 여유로움이 묻어나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었다고 말을 건네니 오히려 ‘지.아이.조’보다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할리우드에 조금씩 적응해나갔지만 사실 ‘레드2’가 ‘지.아이.조’보다 걱정이 많이 됐었어요. ’지.아이.조’는 전 세계를 겨냥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닌자가 나오든 거북이가 나오든 문화 차이 없이 만화를 베이스로 전 세계 관객이 다 볼 수 있는 영화였어요. 하지만 ‘레드2’는 미국적인 영화 잖아요. 처음에 캐스팅 됐을 때 좋기도 했지만 ‘이거 어떡하지, 물과 기름처럼 붕 떠버리면 어떡하지’ 그런 고민이 있었어요. 영화 자체도 미국적이지만 코미디 장르가 미국식 정서와 문화를 내 몸에 속속들이 익히지 않고서 관객을 웃기는 건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썰렁하면 큰일인데 의도한 것만큼 관객들을 웃게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죠.”


하지만 그의 걱정과는 다르게 ‘레드2’의 반응은 뜨겁다. 특히나 극 중 이병헌이 분한 한 캐릭터의 인기는 실로 놀라울 정도. 실제로 미국 시사회 이후 이병헌의 한 캐릭터는 70%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이병헌 자신도 본인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 영화 보는 내내 자신이 나올 때 웃는 관객들의 반응에 신이 났다고 전했다.
“일단 프리미어 행사를 할 때마다 극장 앞에 모이는 팬들의 호응이 좀 달랐던 건 사실이에요. 서양인들이 훨씬 많더라고요. 물론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행사에 왔겠지만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길거리에선 나를 알아보진 못하지만 그래도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영화를 볼 때 미국적인 코미디라 이 사람들은 웃을 준비를 하고 보기 때문인지 표현이 자유로워서인지 모르겠지만 웃으면서 보시더라고요. 제가 냉장고 문을 뜯어서 액션을 하는 장면이 끝나고 나서는 굉장히 큰 박수를 받았어요. 의외의 반응인데 기분이 정말 좋았고 신나더라고요.”
‘레드2’에서 한 캐릭터는 몸이 좋은 인물로 설정이 돼있다. 때문에 극 초반, 이병헌의 그림 같은 근육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도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의 할리우드 작품들에선 모두 노출 장면이 있었다. ‘지.아이.조’에서도 그랬고 ‘지.아이.조2’에서도 그랬고 이번 ‘레드2’ 역시 마찬가지다. 설마 할리우드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겠냐며 농담을 던진 이병헌은 노출이 캐릭터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노출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어쩌다 보니까 연속이 된 것이라 생각하지 할리우드 스태프들이 제 몸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진 않아요(웃음). 노출은 관객들한테 저 사람 되게 센 사람이고 보통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느낌을 1초라도 각인시키기 위해서 넣어놓은 장치인 것 같아요. 비록 몸을 만들기 위해선 3개월씩 고생을 해야 하지만 캐릭터를 구축하고 이미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레드2’에서 이병헌이 분한 한 캐릭터는 집착형 킬러. 프랭크(브루스 윌리스 분)를 죽이라는 청부를 받고 프랭크에 대한 집착을, 그리고 프랭크가 자신의 전용기를 훔쳐가자 이제는 전용기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실제 이병헌이 집착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소년성이라고 답했다.

“나이 들어가면서 잃을 수 있는 소년성을 잃고 싶지 않아요. 나이든 여배우에게도 소녀가 있고 나이든 노인에게도 소년성이 있잖아요. 특히나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소년성이 없으면 큰 것을 잃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소년성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보단 제 안에 소년성이 많고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할 뿐이에요. 친구들이랑 형들이랑 엄마한테도 ‘왜 아직까지 철이 안들었냐’라는 소리를 듣는데 저는 철 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철이 들고 안 들고도 주관적인 판단일수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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