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수 구단 체제가 휴식기를 주니 당장 보면 괜찮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리그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선수들의 기량 향상 및 유지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성적은 둘째 치고 야구를 임하는 진지한 자세. 동료를 위하는 마음. 타지에서 3년 째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2년 전 일본 구단에 빼앗겼더라면 큰일날 뻔 했다. 2시즌 반 동안 36승을 거둔 두산 베어스 외국인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32)는 새로운 역사를 쓰며 최고의 한국형 외국인 선수 고지를 바라보고 있다.
니퍼트는 지난 17일 잠실 NC전 선발로 나서 7이닝 동안 103개의 공을 던지며 3피안타(탈삼진 4개, 사사구 3개)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를 따냈다. 4회까지 피안타 없이 노히트 피칭을 펼치는 등 발군의 활약이었다. 최고 구속 152km에 커브-슬라이더-체인지업-투심 등 다양한 레퍼토리로 신생팀 타선에 맹공을 퍼부었다. 올 시즌 첫 10승 고지를 밟은 투수가 된 니퍼트는 2시즌 반 동안 통산 74경기 36승20패 평균자책점 2.99를 기록 중이다.

외국인 투수가 3년 연속으로 10승 이상을 거둔 예는 니퍼트 포함 세 번 밖에 없다. 두산에서 2007년까지 뛰기도 했던 최다승 외국인 투수(91승) 다니엘 리오스가 KIA 시절이던 2002~2004시즌 이 기록을 처음 세웠고 두산에서 활약했던 맷 랜들이 2005~2007시즌 3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뒀다. 그리고 이번에는 니퍼트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리오스가 쾌활했고 랜들이 소탈했다면 니퍼트의 경우는 매너와 스스로의 소신을 갖춘 투수. 한국 무대를 처음 밟았던 2011시즌 초기 니퍼트는 “사실 두산의 오퍼를 받은 뒤 한국에서 뛰었던 지인과 동료들로부터 조언을 구했다. 모르는 곳이었던 만큼 ‘좋지 않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다행히 한국 리그 경력의 동료들은 니퍼트에게 “한국은 선수로서 뛰기 좋은 곳”이라고 전했고 덕분에 두산은 에이스를 보유하게 되었다.
국내 선수들과의 조화도 문제없다. 니퍼트는 공수 교대 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 주거나 호수비를 펼친 선수, 그리고 덕아웃으로 가장 늦게 들어오는 코너 외야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기 위해 거의 매 이닝 기다렸다가 반겨주고 들어가는 투수다. 형식적인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야수들에게 “난 널 믿고 있다”라는 마음을 전하는 동료로서 미덕. 지난 시즌에는 스캇 프록터와 함께 “우리도 두산 선수단 일원이다. 팀 케미스트리를 해치거나 규율을 어긴다면 우리도 벌금을 내겠다”라며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다. 올 시즌 개막 전 니퍼트는 처음 경험하는 홀수 구단 체제에 따른 1주 나흘 가량의 휴식기 일정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선발 투수인 만큼 휴식기가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니퍼트는 자신만을 생각지 않고 전체 선수들을 생각하며 “실전 감각 유지는 물론이고 시즌 운용에 있어 선수의 바이오리듬도 해쳐 부상 위험을 높일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외국인 투수에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사실 놀랐다. 스스로 한국 리그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고 나온 의견이기 때문이다.
2011시즌이 끝난 후 니퍼트의 에이전트사는 일본 요미우리에 그를 보내고자 했다. 그에 대해 알고 있던 니퍼트는 시즌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고 인터뷰 당시 눈물을 비추며 아쉬워했다. 사실상 합의에 도달하는 듯 했으나 계약 확정을 앞두고 요미우리가 미온적인 입장으로 변했고 선수 본인도 동북부 대지진 등으로 우려를 나타내며 두산과의 재계약을 선택했다. 첫 해만 뛰고 떠날 수도 있었던 그는 지난해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가 패배로 끝난 후 가슴을 치며 국내 선수 못지 않게 수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제는 단순한 외국인 투수를 넘어 진짜 두산 선수단 일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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