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름 고집하는 이병헌의 빛나는 자존심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7.21 07: 56

[유진모의 테마토크] 미국명 브루스 리, 중국명 리샤오룽,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소룡으로 알려진 배우 겸 무술인은 당대의 영웅이었다.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그리고 '사망유희' 단 다섯 편의 영화만 남기고 33살로 짧고 굵게 살다 세상을 떠난 그는 액션영화계의 판도를 바꿨고 서구사회에 중국무술에 대해 널리 알렸고 동양무술의 우수성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는 중국도 영국도 아닌 홍콩에 대한 관심을 주도한 인물이다. 영국이 지배한 중국어권 홍콩이란 작은 나라에 얼마나 많은 영화인이 있고 그들이 우수한 액션영화를 만드는지 널리 알렸다. 그리고 그는 영춘권과 태권도 등을 결합한 실전무술 절권도를 창시하고 전 세계에 보급했다. 국내에서는 장혁이 절권도 유단자다.
리샤오룽의 뒤를 이은 홍콩 출신의 세계적인 액션스타는 청룽(성룡), 미국명으로 재키 챈이다. 그리고 그 뒤를 또 잇는 배우가 리롄제(이연결), 미국명 젯 리다.

영국의 영향을 받은 홍콩 사람들은 중국식 이름과 영어식 이름을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홍콩 연예스타들 역시 대부분 영어 이름을 갖고 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한 스타라면 영어식 이름은 당연지사.
할리우드 영화 '스피드 레이서'와 '닌자 어쌔신'에 출연한 비는 레인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통한다. 하지만 '지아이조' 1, 2편과 '레드 2'에 연달아 출연하며 진정한 할리우드 스타로서 자리매김해가고 있는 이병헌은 이병헌을 고집한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에게 헌 리병으로 불리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까지 갖고 있는 그이지만 그는 영어 이름을 가질 생각도, 병헌 리로 살짝 미국식으로 바꿀 생각도 없다고 한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관객들이 이병헌이란 한국 이름을 외치는 것을 보고 싶다"며 한국인이란 자부심을 강조했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자존심이고 아름다운 고집이다.
지금 전세계는 누가 뭐래도 한류열풍의 도가니다. 아시아 동쪽 구석의 작은 나라, 그것도 1000년 이상 외침을 받아왔으며 중국의 내정간섭을 받다못해 심지어는 일본에 점령당하기까지 했던 나라. 부끄럽게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오명을 쓰고서 크지도 않은 국토가 반토막난 한반도 남쪽의 대한민국. 이 나라가 지금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프로스포츠의 변방이었던 한국은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썼으며 불모지였던 야구로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미국 쿠바 일본의 자존심을 구겼다.
특히 한국의 여자 골프는 LPGA를 휩쓸며 세계 골프 강호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고 있다. 골프에 빠질 만큼 그렇게 잘 사는 나라도 아니고, 골프를 잘 할 만큼 그다지 체격조건이 좋지 않은 나라에서 나고 자란 태극낭자들은 미국의 프로골프 대회를 싹쓸이하며 한국 여자골프의 위력을 세계 만방에 과시하고 있다.
문화 콘텐츠의 한류열풍은 단연 한국이 낳은 가장 훌륭한 세계적인 성공상품이다. 드라마 영화 가요 등이 세계의 대중의 눈과 귀를 자극하며 한국 대중문화의 우월성을 입증하고 있다.
얄팍한 일본은 '기무치'로 김치의 인기를 자신들의 성과로 돌리려 하지만 똑똑한 세계인의 입맛은 한국의 김치만을 오직 김치로 인정한다.
한때 동양의 신비로움에 심취해 중국과 일본의 문화에 눈길을 줬던 세계인의 취향은 이제 확실하게 한국의 대중문화에 입맛이 길들여졌다. K팝에 환호하고 한국드라마에 중독돼 있다.
그 중심에 서있는 배우가 바로 이병헌이다. 이제 대한민국이 '사우스 코리아'라고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혹은 그냥 코리아라고 하면 남한인지 다 안다. 한국은 남측이지 북측이 아니다. 세계인이 그 정도 구분쯤은 할 줄 알게 됐고 그 일등공신은 단연 한국의 연예인 및 연예관계자들이다.
칸은 이미 여러 차례 한국의 감독과 배우들에게 상을 줬으며 베니스영화제 역시 김기덕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할리우드는 김지운 감독과 박찬욱 감독에게 메가폰을 쥐어주는가 하면 봉준호 감독에게 투자해 '설국열차'라는 대작을 만들게 했다. 그들 역시 따로 영어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세계 시장을 확실하게 점령한 자랑스러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배우 이병헌이 따로 영어식 이름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그는 누가 뭐래도 자랑스러운 한국인 이병헌이지 병헌 리가 아니다.
미국 등 서구는 이름-성의 순으로 이름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성-이름의 순서로 쓴다. 그런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경우 서구사회로 진출하면 하나같이 서양식으로 이름-성의 순서로 바꿔 많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 예컨데 LPGA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일본 선수로 미야자토 아이가 있는데 그녀는 스코어 카드 등의 공식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아이 미야자토로 표기한다.
하지만 이병헌은 분명히 자신이 헌 리병이나 병헌 리가 아닌 이병헌임을 강조하고 그 이름을 변경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왜냐면 그는 한국의 이씨 가문에서 태어난 병헌이고 그래서 그의 풀네임은 이병헌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당당한 자기주장이고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인가?
과연 비가 비의 영어인 레인으로 굳이 개명했어야 했을까? 비라는 단어 자체도 간결하고 임팩트있으며 아름다운 발음임에도.
[연예 칼럼니스트]osensta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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