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드 오퍼는 2년 전부터 계속 나왔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한 고영민의 가치에 비해 상대팀에서는 균형이 맞지않는 카드를 내놓으니 트레이드 협상이 이뤄질 수가 없다”.
한때 ‘고제트’ 고영민(29, 두산 베어스)은 두산 야구의 아이콘이었다. 2006시즌부터 안경현을 대신해 두산 2루 자리를 맡은 고영민은 2007시즌 36도루(3위)를 올리며 이종욱-민병헌과 함께 두산 발야구를 이끌었다. 그해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고영민에게 돌아갔다. 2008시즌에도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에도 공헌했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수비-주루 면에서 기존 야구에서 거의 못 봤던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상대의 혼을 빼놓았다. 현장에서 고영민을 극찬했던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2009시즌부터 고영민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잇단 발목 부상과 슬럼프로 인해 점차 자신의 자리를 후배 오재원에게 내주기 시작했고 허리 부상까지 겹치며 어느 순간 2군이 익숙한 선수로 변해갔다. 지난 시즌 중반 특유의 파격적인 발야구를 선보이며 힘을 보탰으나 결국 또다시 부상 등으로 인해 2군으로 내려갔다.

2년 전부터 고영민은 트레이드 협상 카드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타 팀에서는 고영민이 1군에서 점차 기회를 잃고 있다는 점과 멀티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두산의 기대에 못 미치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구단 관계자는 “카드가 맞지 않았다”라고 물밑 협상 당시를 돌아보았다. 두산은 고영민의 창의적 야구 혜택을 많이 봤던 만큼 건강한 고영민의 부메랑이 얼마나 거셀 지 알고 있다.
올 시즌 현재 두산 1군에서 고영민의 입지는 너무도 좁아졌다. 10경기 2할8푼6리 1홈런 1타점 1도루가 고영민의 올 시즌 1군 성적. 중견수로까지 나서며 야구 인생의 모험을 걸었으나 허리 부상으로 인해 재활군에 있다가 지금은 2군 경기에 출장 중이다. 고영민의 올 시즌 2군 성적은 10경기 4할4푼8리 2홈런 10타점이다. 그러나 이제 두산의 주전 2루수는 고영민이 아니라 오재원인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지금 시점이 중요한 것은 고영민이 1군 빈 자리를 노릴 만한 부분이 있다는 점. 내야수 허경민이 왼 발목 부상으로 재활군에 있는 가운데 일단 고영민이 2군 경기에서라도 건강하게 뛰고 있다는 것은 눈여겨볼 만 하다. 오재원 뿐만 아니라 최주환, 김동한 등 후배들의 기량도 뛰어난 만큼 고영민이 눈에 불을 켜고 나서야 하지만 충분히 고영민도 팀의 시즌 캐스팅보드를 쥔 야수다.
지난해 7월 27일 잠실 롯데전부터 8월 7일 대전 한화전까지 고영민은 22타수 8안타(3할6푼4리) 6타점을 올리며 두산이 재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고질화되었던 허리 근육통이 다시 발목을 잡았고 결국 고영민은 포스트시즌을 2군에서 지켜보는 비운을 맞았다. 그리고 지금은 고영민이 부상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1군에서도 위력을 제대로 내뿜을 만한 좋은 후배들이 워낙 많다. 팀 입장에서 건강을 찾은 고영민을 곧바로 1군에 올릴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다.
최근 수 년간 고영민은 연봉이 절반 이상 대폭 연달아 하락하는 야구 인생의 위기 속 살아왔다. 선수 본인도 훈련하는 데 있어서 대단한 열성을 보여줬고 부활을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고비마다 부상이 그를 덮쳤고 그 사이 좋은 후배들이 1군에서 사자후를 내뿜었다. 트레이드 협상에서도 평가절하 되어버린 ‘위기의 남자’ 고영민은 남은 시즌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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