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마음고생이 심했지요. 어쨌든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경기 전 선수들의 연습 과정을 지켜보던 강만수 우리카드 감독의 얼굴과 어투는 한 달 전보다 훨씬 밝았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카드’라는 이름을 달고 코트에 나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선수들은 그동안의 설움을 투지로 승화시킨 끝에 감격적인 첫 승을 따냈다. 새로운 출발점에 선 우리카드가 드디어 힘찬 날갯짓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우리카드는 22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2013 안산·우리카드 프로배구대회’ 조별예선 A조 KEPCO와의 경기에서 주축 선수들의 고른 활약 끝에 3-2 승리를 거뒀다. 2-1로 앞선 4세트 매치포인트를 잡고도 승부를 결정짓지 못해 우려를 모았으나 결국 강한 집중력과 투지로 공식전 첫 승리를 따냈다. 경기 후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단순한 1승이 아니었다. 힘들었던 시기를 빠져나온 뒤 거둔 승리라 그 의미는 더 값졌다. 우리카드는 자칫 잘못했으면 또 한 번 ‘미아’ 신세가 될 뻔했다. 우리금융지주 수뇌부가 바뀐 이후 배구단에 대한 인식이 180도 바뀌면서 인수포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드림식스 시절 한국배구연맹(KOVO)의 관리를 받았던 선수들은 또 한 번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강만수 감독도 “선수들 마음고생이 심했다”라고 담담하게 당시를 떠올렸다.
강 감독은 “분위기가 좋을 수는 없었다. 훈련을 끝낸 뒤 인터넷에서 팀 관련 기사를 검색하는 것이 선수들의 일상이었다”고 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강 감독 이하 선수들이 똘똘 뭉쳐 훈련에 매진했다. 강 감독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라고 칭찬했다. 그 땀방울은 KEPCO전 첫 승으로 이어졌다.
어렵게 되찾은 기회다. 선수들 스스로도 좋은 성적을 통해 배구단이 모기업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피곤한 선수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선수가 있었음에도 KEPCO전 승리를 따낸 근본적인 원동력이기도 하다. 라이트 김정환은 1세트에서 발목을 다쳤지만 출전을 강행하는 투지를 보이기도 했다. 주축 센터인 신영석은 “오래 오래 팀이 지속돼서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다”라는 말로 선수들의 각오를 대변했다.
가능성은 충분한 팀이다. 강 감독은 “큰 공격을 할 수 있는 선수들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선수들의 기량 자체는 고르다”고 팀의 장점을 설명했다. 실제 우리카드는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자 출신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다른 팀 감독들이 탐을 내는 선수들도 많다. 잘 꿰기만 하면 프로배구판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이미 지난 시즌에 증명됐다.
외국인 선수가 들어오면 어려운 공 처리는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강 감독은 “최홍석도 시즌 전까지는 괜찮아질 것이다. 신으뜸도 알토란같은 몫을 하고 있다”면서 “센터 박상하의 입대 공백이 가장 큰 문제인데 박진우로 메울 것”이라며 청사진을 드러냈다. 우리카드가 써내려가는 역사와 전통은 당리당략이 배제된 코트에서 지금 이 순간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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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연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