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한국 TV 드라마사에서 고 김종학 감독은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김종학하면 '모래시계'다. "나 떨고 있니" 최민수의 마지막 명 대사가 아직도 회자중인 김 감독의 '모래시계'는 지난 1995년 방영 당시 서울 도심을 한적하게 만들 정도로 파괴력을 자랑했다.
'모래시계'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PD 자리에 올랐지만 사실 김 감독의 강력한 연출 내공은 그 훨씬 이전부터 많은 수작 드라마들을 만들며 차곡차곡 쌓인 결과물이다. 1970년대 경찰 수사물의 고전 '수사반장'을 시작으로 '인간시장'(1988) '황제를 위하여'(1989) 그리고 대작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1991) 등은 김 감독을 드라마계의 흥행 보증수표로 각인시켰다.
그리고 '모래시계'. 김감독의 연출사는 '모래시계' 전과 후로 나뉠수밖에 없다. 그만큼 '모래시계'가 고인의 일생에 끼친 영향은 컸다. '모래시계' 이후로 김 감독은 최고 톱스타 출연료를 능가하는 연출료를 받으며 자신이 만들고 싶은 드라마를 원하는 방향으로 찍을 수 있는 영향력을 갖게 됐다. 대한민국 드라마 PD 역사상 전무후무할 파워를 가졌고 김종학 프로덕션으로 독립하는 계기였다.

하지만 김 감독의 명성은 한류스타 배용준, 톱작가 송지나와 힘을 합친 '태왕사신기'(2007)에서 정점을 찍으면서 동시에 내리막길로 접어든게 아이러니다. 사상초유의 제작비를 투입한 '태왕사신기'는 국내외의 높은 관심과 시청률 성공에도 불구하고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엄청난 제작비로 인해 김종학 프로덕션에 어려움을 안겼을 것이라는게 연예계의 숨은 시각이다.
그리고 2012년 '신의'로 컴백한 그는 출연료 미지급 등 어려움이 겹치면서 갖가지 송사에 휩싸이는 인생고를 겪기 시작했다. 김종학 이름 석 자 만으로 어떤 드라마라도 뚝딱 만들수 있던 1990년대 전성기와 비교하면 너무나 상반된 현실에 고뇌했을 고인의 아픔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분당경찰서에 따르면 고인은 23일 새벽 경기도 분당의 한 고시텔에서 순찰을 돌던 경찰관에 의해 숨진채 발견됐다. 한국 TV 드라마사 최고의 거인으로 평가받던 그의 마지막 순간으로서는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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