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위대한’ 이재우의 선발승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3.07.25 22: 02

“인대가 또 끊어졌다고 하더라고. 이명우(롯데)는 나랑 똑같은 수술을 받고 1년 만에 1군에도 나오고 그러던데. 난 왜 이럴까”.
3년 전 미국 LA로 건너가 토미존 서저리(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그는 재활 도중 1년도 되지 않아 수술 받은 인대가 다시 끊어졌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한숨을 뱉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그는 양 손목 인대가 없는 사람이다. 모두 오른 팔꿈치 인대를 다시 잇는 데 쓰였기 때문이다. 두산 베어스 베테랑 우완 이재우(33)가 1208일 만에 소박하지만 뜻깊은 선발승을 거뒀다.
이재우는 25일 목동 넥센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동안 93개의 공을 던지며 4피안타(1피홈런, 탈삼진 3개, 사사구 4개) 4실점을 기록했다. 일반적인 선발 투수들의 기록으로 비춰보면 함량미달의 성적. 그러나 그는 최대 70구 정도였던 한계 투구수를 넘어섰고 팀이 11점을 뽑아준 덕택에 2010년 4월 4일 문학 SK전 6이닝 무실점 승리 이후 1208일 만에 선발승을 따냈다.

한때 이재우는 정재훈과 함께 두산 투수진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였다. 2005년 팀이 필요한 순간 언제든 나오며 28홀드로 홀드왕좌에 올랐는데 선발 등판 한 차례도 없는 중간계투로서 99⅔이닝을 던졌다. 불펜 대기와 연투를 감안하면 이닝 수 이상의 고생이 담겼다. 그해 두산은 얇은 선수층으로 최하위권 전력 평가를 받았으나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이재우는 그 팀의 주력 투수였다.
공익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2008년에는 중간계투로 11승을 올렸고 2009년에는 선발, 계투를 오가며 고창성(NC), 임태훈, 이용찬 등과 함께 계투 KILL 라인 맏형으로 분전했다. 그리고 이재우는 그 과정 속에서 팔꿈치가 아파도 참고 던졌다. “코칭스태프께서 ‘네가 있어야 한다’라며 기를 불어넣으셨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팔이 아프다고 빠질 수 있을까”. 당시 김경문 감독(현 NC 감독)도 이재우의 고생을 알고 2010시즌부터는 연투가 잦은 계투가 아닌 선발로 쓰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제 선발로 편하게 던지나 싶었던 2010시즌 탈이 났다. 그의 수술 전 마지막 선발승은 바로 그해 시즌 첫 승. 그것도 한국시리즈-플레이오프에서 3년 연속 발목을 잡던 SK를 상대로 거둔 승리였다. 그리고 6일 후인 10일 잠실 LG전서 이재우는 2아웃만을 잡은 뒤 팔꿈치가 아프다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가 다시 마운드에 서는 데는 수술대와 재활센터를 거쳐 2년 이상이 걸렸다.
후유증도 겪었다. 이재우는 지난 5월 7일 문학 SK전서 1이닝 4실점 선발패를 당한 후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2군으로 내려갔다. 당시를 떠올린 이재우는 “투구수 30구가 넘어갔을 때 갑자기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처음 다쳤을 때처럼 안 좋았다. 이 팔 때문에 2년을 힘들었는데. 또 다치면 끝인데.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라고 밝혔다. 팔꿈치 통증은 다행히 단순 건염 증세로 밝혀졌으나 그로 인해 한동안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이재우다.
기록은 화려하지 않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저 투수가 타선 지원 덕택에 손쉽게 승리를 거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재우는 이 승리를 얻기 위해 2년 넘는 시간 동안 수술을 하고 재활을 하고 부상 재발-재수술-2차 재활이라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삶을 살았고 생각보다 훨씬 긴 어둠의 터널에서 숨죽였다. 이재우의 5이닝 4실점 선발승을 단순히 ‘타선 덕분에’ 이긴 경기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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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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