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서는 걸 즐기는 타자가 있고, 가급적이면 찬스를 피하고자 하는 타자가 있다. 보통은 타격 컨디션이 좋으면 찬스를 기다리고 자신감이 없을 때는 다른 타자에게 찬스를 떠넘기기 마련이다.
27일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롯데는 SK 에이스 세든을 상대로 6회까지 단 1득점에 그치며 1-3으로 끌려갔다. 선발 김사율이 4이닝 1실점으로 호투를 펼쳤지만 6회 불펜에서 2점을 내줬다.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자칫 SK와의 주말 3연전에서 먼저 두 경기를 내줄 판이었다.
그러던 7회 롯데는 역전기회를 잡았다. 투수가 박정배로 바뀌자 강민호의 우전안타와 장성호의 볼넷, 그리고 대타 박준서의 우익수 앞 2루타로 한 점을 따라갔다. 그리고 주자는 득점하기 가장 쉽다는 무사 2,3루, 롯데는 땅볼이나 뜬공 하나만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릴 기회를 잡았다.

문제는 그 간단한 땅볼이나 뜬공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 무사 2,3루에 등장한 문규현은 앞선 두 타석에서 안타 2개를 치며 좋은 타격감을 보여줬지만 정작 찬스에서 1루수 정면으로 가는 땅볼을 쳤다.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타구였다. 계속되는 1사 2,3루에서는 이승화가 삼진으로 물러났다.
타석에 들어선 건 정훈. 이제 득점을 위해서는 안타가 필요했다. 박정배를 상대로 정훈은 볼카운트 2볼 1스트라이크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그리고 몸쪽으로 파고든 4구, 정훈은 상체를 뒤로 빼면서 공을 피했다. 그후 별다른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고, 권영철 구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느린화면으로 그 장면을 보니 정훈의 유니폼 끝자락에 투구가 살짝 스쳤다.
이 경우 타자는 당연히 자신의 몸에 공에 스친 걸 느끼게 된다. 정훈 다음 타자는 손아섭, 올 시즌 타격 2위에 최다안타 1위를 달리고 있는 팀 내 최고의 타자다. 그렇지만 정훈은 맞았다는 걸 전혀 티내지 않았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묵묵하게 다음 공을 기다렸다.
그리고 정훈은 거짓말같이 우측 펜스를 직접 맞히는 역전 2타점 3루타를 작렬시켰다. 2루를 거쳐 3루를 밟은 정훈은 격한 세리머니 대신 불끈 두 주먹을 쥐며 소소하게 기쁨을 즐겼다.
올 시즌 정훈은 박정배를 상대로 1타수 1안타를 기록하고 있었다. 단지 올해 안타를 쳤다고 정훈이 자신감을 가진 건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그 보다는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자세였다. 설령 정훈이 몸에 스쳤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신감이 없었다면 몸에 맞았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역시 야구는 멘탈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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