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씨, 국가대표를 품은 그분이 부럽네요
OSEN 윤가이 기자
발행 2013.07.29 07: 57

[OSEN=윤가이의 실은 말야] 고백하자면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병헌 씨를 만났습니다.
매년 영화제 기간 이면 밤마다 유독 환한 불을 밝히는 해운대 포장마차촌에서였죠. 이병헌 씨는 일행 몇몇과 함께 제가 자리하고 있던 포장마차에 들러 잠시 머물다 갔습니다. 기억엔 동이 트려면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었던 것 같고 그래서 이병헌 씨 역시 꽤나 얼큰히 술이 올랐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시 '광해, 왕이 된 남자'에 함께 출연한 배우 류승룡 씨와 함께 제 바로 옆 자리에 앉았던 당신은 금세 분위기를 돋우고 유쾌한 입담을 늘어놨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서는 우연히 이병헌 씨가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워낙 가까이 붙어앉은 탓에 원치 않아도 들렸던 통화 내용, 휴대폰 너머 상대는 예비신부 이민정 씨였죠. "민정아"로 시작되던 통화는 중간에 흔한 연인들의 토닥거리는 말싸움으로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이후엔 일부러 더 듣지 않았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이니까요.
그리고 시간은 흘러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천만 관객을 훌쩍 넘는 대박을 이뤘고 지금 당신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레드 더 레전드'를 극장에 걸었습니다. 세 번째 할리우드 출연작 '레드 더 레전드' 역시 흥행이 예사롭지 않네요. 영화 기자들 사이에선 사실 쟁쟁한 대작들과의 경쟁에서 얼마나 잘 되려나싶어 큰 기대는 하지 않던 작품인데요. 개봉 열흘만에 벌써 200만 관객을 돌파했네요. 수줍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싶습니다.

불과 10개월 전, 해운대의 포장마차에서 휴대폰 너머 연인과 사랑 싸움을 하던 남자 이병헌은 지금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 완벽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이미 오래전부터 한류스타였고 연기 잘하는 배우였고 많은 여성팬들을 거느린 인기 스타였던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할리우드에 첫 진출한 것도 '지.아이.조 1' 때니까 이미 4년 전 일이고요. 최근 10개월 사이 갑자기 뜬 벼락 스타도 아니지만 새삼스레 당신을 대한민국 대표 배우라 칭하고 싶은 건 SBS 스페셜 '오래된 신인 이병헌, 그리고 할리우드' 편을 보고 난 가슴 벅찬 감동 때문입니다.
 
이날 다큐멘터리 속 당신은 국가대표였습니다. 4년 전,(조금은 성에 차지 않았더라도) '지.아이.조' 속 스톰 쉐도우 역할을 위해 할리우드로 처음 건너간 이병헌 씨가 겪었고 느꼈을 고독이나 어려움은 아무리 상상해봐도 와닿지 않습니다. 국가대표 타이틀을 달고 올림픽 무대에 올라가는 스포츠 선수들의 심정이 아마 이와 비슷할까요? 언어도, 세상의 시선도, 물론 연기마저도 모든 것이 불편하고 낯설기 짝이 없었을테죠. 힘들었던 그때를 담담히 고백할 수 있는 지금, 그래도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할까요? 이제는 할리우드 차이니즈 씨어터에 당당히 손도장을 새기고 브루스 윌리스, 헬렌 미렌, 존 말코비치, 캐서린 제타존스 등 쟁쟁한 할리우드 톱배우들과 연기 호흡을 맞추며 의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얼마 전 '레드 더 레전드' 개봉을 앞두고 SBS 라디오에도 출연했던 일을 알고 있습니다. '라디오까지 나오고 차 열심히 홍보하는구나'란 생각을 얼핏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날 다큐멘터리를 보니 생방송 도중 공황장애까지 겪었더군요. 별안간 몸을 숙이고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간 당신의 모습이 애처롭고 아팠습니다. 큰 성공과 결실에는 반드시 이런 고통과 인내가 담보되어야 하는가 봅니다. 24시간 약봉지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한 날이 꼭 빨리 찾아오길 바랍니다.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중 '이병헌은 호불호가 갈리는 배우였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맞는 얘기입니다. 많은 대중이 당신을 '연기 잘하는 배우', '한류스타'로 부르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던 게 사실인데 혹자들은 온갖 소문과 몇몇 논란들을 들어 당신을 가자미눈을 뜬채 바라보기도 했죠. 하지만 "힘들어도 한번 해보겠다. 나를 보며 후배들이 지름길로, 더 좋은 길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당신 모습, '레드 더 레전드'의 감독에게 시나리오 속 중국인으로 설정됐던 '한' 캐릭터를 한국인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하던 마음, 대한민국 대표 배우가 아니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이런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면,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팬들이 당신을 응원할 수 있을 거라 믿구요.
이제 이민정 씨와의 결혼식이 열흘 남짓 남았네요. '만인의 연인' 이민정을 앗아간(?) 나쁜 놈이라고 많은 남성팬들이 질투하기도 했었는데요. 이병헌 씨, 개인적으로 오늘만큼은 이민정 씨가 아주 부럽습니다. 단언컨대, 대한민국 대표 배우답게 늘 지금처럼 일하고 또 열심히 사랑할거라 믿습니다. 더불어 지난 밤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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