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희는 배우다. 드라마 '그대, 웃어요'(2009)로 호흡을 맞췄던 후배 배우 전혜진과 종영 후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에 골인해 품절남이 됐지만, 배우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작품 속에서 그는 여전히 로맨스의 주인공이 됐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들었다.
물론 '결혼'이라는 외적요인의 변화는 그의 연기관과 삶에 적잖은 변화를 안겼다. tvN 드라마 '연애조작단; 시라노'(이하 '시라노')를 막 끝마치고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는 이천희를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변화된 삶에 대해 오밀조밀한 이야기를 나눴다.
유부남이자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이천희는, 결혼 전 마주했을 때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넉살이 좋고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훈남이었다. 다만 그의 주변을 에워싼 왠지 모를 차분함과 안정감 가득한 공기는 분명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결혼을 통해 현실세상에 편입(?)한 이천희에게 드라마 속 로맨스에 대해 물어보니, 여전히 신혼의 단꿈에 빠져있는 듯한 자상한 남편 버전의 답변이 되돌아왔다.
"오히려 이걸('시라노') 하면서 더 많은 걸 알게 됐죠. '예전에 연애를 할 때 이렇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남이 나를 좋아하게끔 애를 쓰는 게 중요한데, 다들 노력에는 인색하죠. 전 지금도 노력하지 않으면 아내를 뺐길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연애하는 기분으로 자꾸 정성을 쏟아요."

더 나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연애를 조작했던 '시라노' 에이전시. 비록 극중 차승표가 '시라노'의 직원은 아니었지만, 드라마를 찍는 동안 연애와 로맨스에 대한 다양한 생각이 교차했을 터. 작품 출연 후 실제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지는 않은지 물었다.
"'내 아내는 뭘 좋아할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난 사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류의 잔잔한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데, 혜진은 '스파이더맨'류를 좋아해요. 싸우는 장면이 한참 나올 때 옆에서 내가 잠드는 걸 싫어한다는 사실도 알죠.(웃음) 또 예전엔 혜진의 생일 선물로 캠핑용 침낭, 랜턴 이런 것들을 선물했는데, 최근엔 평소 '갖고 싶다'고 말했던 걸 기억해 사다줬어요."
여전히 연애중인 감정이라면, 아내 전혜진의 입장에서 남편 이천희가 작품 속에서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 수영과 달콤한 호흡을 맞췄다는 데 질투가 나진 않았을지 궁금했다.
"찍다 보니 그저 동료 연기자라는 생각만 들었어요. 한 번은 촬영 하는 도중에 유리씨와 효연씨가 왔는데, 순간 '쟤네가 여긴 왜 왔지?'라고 한참 생각했을 정도예요. 그러다 '아 맞다! 수영이가 소녀시대지'라는 걸 떠올렸죠. 연기를 곧잘 해서인지, 몹시 털털해서인지 아이돌 그룹이란 느낌이 거의 없었어요."
더불어 선배의 입장으로서, 배우로서 수영이 가진 자질을 높이 평가했다.
"분명 자질이 있어요. 잠깐 해보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하고 싶다는 마음도 충분히 느껴졌죠. 사실 수영이 맡은 민영이라는 캐릭터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만큼 행여 흔들리기라도하면 전체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초반엔 솔직히 걱정을 좀 했는데, 1~2회를 찍고 나니 그런 걱정이 싹 사라졌어요."

앞서 지난 2010년 기자와의 인터뷰 당시, 이천희는 "부유한 캐릭터를 맡아본 적이 없다"며 중산층을 넘어선(?) 배역에 대한 막연한 욕심을 내비쳤던 적이 있다. 그게 인연이 됐는지, 이번 '시라노'에서 그는 레스토랑의 마스터 셰프로 등장해 소원을 성취했다. 그렇다면 다음 작품엔 어떤 캐릭터가 탐날까.
"일단 진한 러브신을 찍으면 쫓겨날 것 같고..(웃음) 대본이 좋다면 어느 작품이든 하고 싶어요. 드라마 '무정도시' 같은 액션물을 해보고 싶어요. 아니면 무림의 고수? 몸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 '탁 탁 탁' 치면 상대가 날아가는 그런 초절정 고수요. 하하"
한때 '패밀리가 떴다'(2008)라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천데렐라', '엉성천희'로 불리며 시청자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과 관련해 '혹시 요즘엔 예능프로그램 출연 욕심이 없느냐?'고 묻자, 고민 끝에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tvN '꽃보다 할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생각만으로도 엄청 재미있을 것 같거든요. 영화 '남영동', 드라마 '대왕세종'을 찍을 때도 현장에서 거의 막내여서 선배님들과 함께 하는 게 익숙하고 즐겁거든요. 할배들을 모시고 캠핑을 가도 신선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직접 제가 호스를 연결해서 씻는 걸 도와드릴 수도 있어요. 전 완벽한 짐꾼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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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