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양)의지가 다쳤다. 안타를 안 맞았더라면 다치지 않았을 텐데”.
그를 기억하는 선배 박명환(전 LG)은 “바보 같이 착하다”라고 인물평을 내놓았다. 마운드에서는 자신 있게 자기 공을 던지는 강심장이지만 밖에서는 어떻게 보면 소심하다 싶을 정도로 착한 선수. 두 번의 팔꿈치 수술과 긴 재활 기간을 딛고 돌아온 베테랑 우완 이재우(33, 두산 베어스)는 후배 포수 양의지(26)에게 고마워하고 더욱 미안해했다.
이재우는 지난 7월 31일 사직 롯데전에 선발로 나서 5이닝 동안 86구 4피안타(탈삼진 2개, 사사구 2개) 1실점 비자책으로 호투하며 시즌 4승(1패)째를 거뒀다. 2010년 4월4일 문학 SK전 6이닝 1피안타 무실점 이후 1214일 만의 비자책 선발승. 위기 상황에서 야수들의 호수비도 있었고 5회 무사 만루에서는 상대를 단 1점으로 봉쇄하는 위기관리 능력을 뽐냈다.

경기 초반 연이어 출루를 허용했으나 실점을 막아낸 데는 실제로 야수들의 도움이 컸다. 1회 1사 2루서 손아섭의 우전 안타 때 우익수 민병헌의 레이저 빔 송구에 이은 포수 양의지의 튼실한 홈 블로킹으로 실점 위기를 넘겼고 2회에는 김대우가 2루 도루에 이어 이재우의 폭투를 틈 타 3루까지 노렸으나 양의지의 송구에 횡사했다. 그리고 이재우는 안정감을 찾은 뒤 5회 무사 만루 위기를 1실점으로 막는 노련미를 보여줬다.
1일 사직 롯데전을 앞두고 만난 이재우는 곁을 지나던 양의지를 보고 “나 때문에 의지가 다쳐서 미안하다”라고 밝혔다. 손아섭의 우전 안타 때 민병헌의 송구를 잡고 태그아웃 시키는 과정에서 생긴 크로스 플레이로 인해 왼 무릎 타박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첫 회 타박상에도 양의지는 5회 쐐기 솔로포와 8회 2타점 2루타로 3타점 맹타를 선보였다.
“내가 안타를 맞지 않았더라면 의지가 안 다쳤을 텐데”. 사실 이재우는 4월 14일 롯데전서 ⅔이닝 2피안타 2실점투로 4-2 리드를 4-4 동점으로 내줬을 때 똑같은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연장 돌입 후 당시 좋은 타격감을 발휘하던 우익수 민병헌이 우측 허벅지 부상으로 경기 도중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동점을 내주지 않았으면 연장도 안 갔을 테고 병헌이도 안 다쳤을 텐데. 부담을 크게 갖고 내 공을 못 던지다보니 연장까지 가서 동료들이 피곤했을 것이다”. 다행히 민병헌의 허벅지 부상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재우는 자신의 동점 허용으로 승리 요건을 갖췄던 앞선 투수는 물론 동료 야수까지 걱정했다.
관계자들 사이에는 ‘성격이 모진 선수가 결국은 성공하고 스타가 되더라’라는 말이 자주 떠돈다. 기싸움에서 뒤지지 않고 경기력 우위까지 이어지려면 그만큼 근성과 오기, 때로는 냉정함이 필요하게 마련. 그러나 이재우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며 후배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다. “바보 같이 착하다”라는 박명환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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