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설국열차’가 폭발적인 흥행세를 보이며 관객을 극장가로 빨아들이고 있다. 영화는 개봉 첫날 41만 관객을 극장으로 모은데 이어 이틀째에 60만 관객을 붙들며 100만 관객을 돌파, 파죽지세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설국열차’는 올 여름 최대 화제작으로 손꼽혀온 작품인 만큼 이 같은 흥행 기록은 당초 예감됐던 사안. ‘살인의 추억’, ‘괴물’로 관객들에게 높은 신뢰도를 쌓은 봉준호 감독이 틸다 스윈튼, 크리스 에반스, 에드 해리슨, 존 허트 등 세계적인 배우들과 의기투합해 전 세계를 겨냥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남달랐다. 여기에 한국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인 430억 원이 투입되고, 개봉 전 167개국에 영화가 선판매 됐다는 소식 등이 전해지며 관객의 호기심이 극대화 됐다.
그리고 이는 개봉과 동시에 관객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결과를 낳으며 봉준호 브랜드에 대한 관객의 신뢰를 입증하는 중이다.

‘설국열차’에 대한 뜨거운 열기는 극장을 꽉 채운 관객들만큼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도 옮겨 붙고 있는 모양새다. 영화는 개봉 이후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어 이 같은 입소문이 영화의 장기 흥행으로까지 이어질 지 여부는 미지수다.
실망스럽다는 반응은 주로 ‘봉준호 브랜드’에서 비롯된다.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을 통해 한국적 상황을 충실하게 드러내온 그는 ‘설국열차’에서 계급투쟁이라는 인류 보편적 이야기를 담아내며 관객이 봉준호 감독에게 기대했던 지점을 무너뜨린다. 가까운 미래 빙하기를 맞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기차에 올라탄 이후 칸칸이 계급을 달리하며 억압하는 이야기는 인류보편사로 글로벌 프로젝트에는 어울리지만 봉준호 감독을 사랑하는 한국 관객에겐 배신감마저 들게 한다.
영화 내적으로도 아쉬움은 남는다. 기차라는 제한된 공간은 억압을 혁파하기 위해 앞으로 전진 해야만 하는 꼬리칸 사람들의 들끓는 욕망이 폭발적으로 응축될 수 있는 곳으로 초반 에너지가 충천하지만 중반 이후 그 같은 화력이 더 이상 불을 뿜지 않고 지루하게 이어진다.
메이슨(틸다 스윈튼)이 커티스에게 잡힌 이후 꼬리칸 사람들의 전진은 너무나 쉽게 이뤄지고 그때부터 이어지는 서로 다른 계급의 삶과 그를 바라보며 충격에 휩싸이는 꼬리칸 사람들의 모습은 예상 가능한 수준에 머문다. 이는 영화의 위기 부분 커티스와 윌포드(에드 해리슨)가 독대하는 장면에서 역시 마찬가지로, 지루하게 이어진 전개 끝에 맞닥뜨리기엔 허망하다.
무엇보다 인류보편사를 다뤘지만 커티스를 필두로 한 꼬리칸 사람들의 투쟁에 관객이 깊이 몰입하기 보다는 멀찍이 떨어져 관람하게 하는 정서는 '설국열차'의 뼈 아픈 실책이다.
메이슨 역을 한 틸다 스윈튼은 기괴한 모습으로 독특하지만 매력적인지는 의문이고, 꼬리칸 지도자 커티스의 절실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조연으로 출연한 남궁민수 역의 배우 송강호의 존재감이 상당한데, 그가 내뱉는 걸죽한 욕설과 목소리는 비로소 이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sunh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