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원래 박수 잘 치는데…".
한화 김응룡(72) 감독은 쑥스러운 듯 얼버무렸다. 지난 3일 마산 NC전에서 4회 엄태용의 중전 적시타 때 김 감독은 두 손으로 크게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무뚝뚝한 김 감독에게서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이날 한화는 4-2로 이겼고, 김 감독은 마침내 프로야구 최초로 감독 1500승 대기록을 세웠다. 박수를 칠 만큼 김 감독에게는 정말 간절한 경기였다. 그러나 대기록 달성 후에도 김 감독은 웃지 못했다. 오히려 고개를 숙였다.
▲ 크게 박수 친 노감독, 간절했던 1500승

김응룡 감독은 지난달 30일 목동 넥센전에서 승리하며 1499승을 채웠다. 그러나 이후 3경기를 내리 패하며 '아홉수'에 걸렸다. 대기록 달성을 앞두고 주위에서 1500승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며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왔고, 조금씩 부담감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김 감독을 보좌하고 있는 김성한 수석코치는 "감독님께서 1500승이 화제가 되니까 많이 부담스러했다. 괜히 팀에 피해가 간다는 생각에 빨리 기록을 달성해서 넘어가고 싶어하셨다"며 "감독님께서 그렇게 크게 박수를 치는 건 나도 거의 못봤다. 그만큼 경기에 집중하고 계셨던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날 경기는 한화가 4-2로 리드한 7회말이 끝난 뒤 폭우가 쏟아져 중지됐다. 25분간 중지된 뒤 경기가 재개됐다. 30분간 비가 오면 강우콜드가 된다. 김 감독은 "딱 5분 남기고 비가 그치더라"고 했다. 그만큼 승리가 간절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래도 9회까지 다해서 그림은 좋았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1500승이 달성된 순간 NC의 홈 마산구장 전광판에는 대기록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크게 띄워졌다. 적장 김경문 감독이 직접 꽃다발을 들고 3루측 덕아웃으로 와 김 감독에게 전달하며 축하했다. 한화 선수들은 물론 NC 선수들도 덕아웃 앞에서 도열해 관중들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끝내 웃음을 띄지 않았다.
▲ 축하 전화·행사도 거절, 웃지 못한 대기록
김 감독은 승리 확정 순간 덕아웃뒤 화장실로 몸을 숨겼다. 경기 후 인터뷰도 짧게 하고 손쌀같이 경기장을 떠났다. 대기록 달성의 감흥이 전혀 없었다. 한화 구단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도 조촐하게나마 축하 자리를 마련했으나 김 감독은 역시 거절했다. 한화 관계자는 "감독님께서 모든 축하 행사를 마다했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이날 숙소에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전화기는 꺼놓았다. "축하 전화가 좀 올 것 같아서 전화기를 일부러 꺼뒀다. 내일(4일) 경기가 있으니 일찍 잤다"는 게 김 감독의 말이었다. 하지만 김영덕 전 빙그레 감독을 비롯해 많은 야구인들이 김 감독에게 축하 전화와 메시지를 보내며 1500승 기록 달성을 축하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지금 내가 1500승 축하를 받을 때인가. 팀이 꼴찌인데 1500승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팀에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해 죽겠다"고 고개 숙였다. NC 김경문 감독은 "김응룡 감독님의 1500승은 앞으로 영원히 깨지지 않을 대기록이다. 그런데 팀 성적에 대기록이 묻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김 감독에게는 과거와 오늘의 1500승보다 내일의 1승이 중요했다. 김 감독은 1500승 달성 뒤 인터뷰에서 "당장 1승이 목마르다. 1500승과 내일 1승을 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가슴을 울리는 말이었다. 김 감독은 "프로는 과거를 잊는다. 지금 성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였다.
▲ 가족도 연락 안했다, 오로지 야구만 생각
대기록을 세운 날 김 감독은 가족들과도 연락하지 않았다. "가족이야 마누라랑 딸둘인데 뭐 있나. 가족들과 워낙 동떨어져 있어서…"라며 쑥스러워했다. 평생 야구장에 인생을 바친 김 감독에게는 가족보다도 야구가 우선인 듯했다. 오히려 김 감독은 1500승의 기쁨보다 앞으로 한화를 어떻게 강팀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김 감독은 앞으로 목표에 대해 "뭐 다른 것 있겠나. 한화를 빨리 강팀으로 만들어야 한다. 최소 4강에 가고, 우승을 해야 강팀이다. 한화는 몇 년간 계속 하위권이고, 지금도 너무 처져있어서 당장은 그렇게 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해야 일이 그것이다. 조금씩 희망이 보이고 있다. 잘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가졌다.
김 감독은 "팀 성적이 좋은 상황에서 1500승을 거뒀다면 의미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팀에 미안할 뿐"이라며 "1600승은 우승과 함께 명예롭게 하고 싶다"고 속내도 드러냈다. 현실적으로 내년 시즌까지 계약돼 있는 김 감독이 100승을 추가하고 우승을 하기란 쉽지 않지만 프로는 언제나 우승만이 목표다.
김 감독은 "해태에서도 남들은 잘 나간 것으로 봤지만, 몇 차례 그만 둘 고비가 있었다. 결국 성적이다. 감독은 성적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개 숙인 1500승을 뒤로 한 김 감독은 영광스런 1600승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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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