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봐도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은 남아 돌았지만 투구가 마냥 힘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잖아요”.
2008~2009시즌 LG 트윈스 투수진은 힘겨웠다. 특히 2009시즌에는 공격력이 뛰어났으나 투수진이 뒷받침되지 못하며 어려운 경기를 치렀다. 그 가운데 이기는 상황에서도 지는 상황에서도 마운드에 올라 전천후로 분전하던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헐거워진 팔꿈치를 수술받고 병역 의무를 해결한 뒤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우완 정찬헌(23)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08년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2차 지명 전체 1순위로 LG 유니폼을 입은 정찬헌은 데뷔 첫 해 39경기 3승13패2홀드 평균자책점 5.50을 기록했다. 기록은 좋지 않아 보이지만 시작을 계투로 끊었던 정찬헌이 씩씩하게 자기 공을 던지고 봉중근-크리스 옥스프링(롯데) 외에 확실히 버티는 선발 투수가 보이지 않자 정찬헌이 급거 이동하며 파도에 맞섰기 때문이다. 그 해 최다패의 아픔 뒤 정찬헌은 18세 나이로 충분히 분전했다.

2009시즌 정찬헌은 전천후 계투였다. 당초 팀의 계획도에서 정찬헌은 마무리 우규민에 앞서 나가는 셋업맨이었으나 시즌 중반부터 팀이 이기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방위적인 투수난 속에 정찬헌은 이기는 순간이 아니라 추격조로도 자주 나섰고 성적표는 55경기 6승5패2세이브10홀드 평균자책점 5.78. 평균자책점이 높으나 하위팀의 승리 계투는 개점휴업할 수 없어 추격조로도 자주 나서다 실점이 많아지는 경우가 있다. 같은 해 한화의 양훈(경찰청)처럼 정찬헌은 바로 그 케이스였다.
결국 두 시즌 동안의 부하를 이기지 못한 정찬헌은 2010년 팔꿈치 수술을 받고 이듬해 공익근무로 병역을 해결했다. 지난 2월 소집해제한 뒤 LG로 합류한 정찬헌은 퓨처스리그서 7경기 1승1패 평균자책점 6.75를 기록했고 지난 7월26일 잠실 두산전서는 이원석에게 홈런을 내주는 등 1이닝 2피안타 1피홈런 2실점으로 복귀 신고를 혹독히 치렀다. 그리고 정찬헌은 지난 4일 삼성전 선발 류제국 대신 2군으로 내려갔다.
“1군 복귀전 때 사실 담담했어요. 많이 긴장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날 타격전(12-15패)이다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차명석 코치님께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밸런스가 맞지 않으면 제 공을 던지기 힘들다고요. 제가 봐도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힘은 확실히 남아돌았는데 맞아 떨어지지 않았던 겁니다”.
1군 복귀전서도 최고 149km를 던질 정도로 힘은 확실히 살아있던 정찬헌이다. 다만 실전 공백이 길었고 수술 전력이 있는 만큼 팀에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정찬헌의 1군 본격 가세 시점을 잡고 있다. 미래 필수 전력이라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 정찬헌. 선수 본인도 조급하게 생각하기보다 완벽하게 올라 팀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은 확실히 고무적이다.
“올해는 몸을 만드는 해라고 생각해요. 소집해제 후 감을 찾는 과정도 쉽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다행히 우리 팀에 좋은 선수들도 많기 때문에 제가 ‘무조건 올라가야 한다’라며 무리하게 전력투구하는 단계로 돌입하는 것도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내년에도 이런 과정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정찬헌 뿐만 아니라 LG 내 그의 동기생 투수들은 확실히 대단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입단 동기이자 2008년 1차 지명 이형종은 다시 야구에 대한 간절함을 찾고 뛰어난 구위를 회복 중이며 좌완 최성훈, 우완 한희, 사이드암 최동환 등이 있다. 입단년도는 다르지만 서로 동갑내기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 서로 의지가 되는 중. 이들은 LG 투수진의 미래다.
“다들 친하게 지내고 있고 서로 의지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성훈이 같은 경우는 살갑게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성격이라서 많이 힘이 됩니다. (이)형종이는 우리 동기들 중에서 가장 승부욕이 강한 친구에요. 그런데 속으로는 여린 감성도 있습니다. 다들 고맙지요. 내년에는 (이)범준이도 상무에서 제대하니 더 힘이 붙을 것 같아요”.
달라진 LG에 대한 긍정 요소는 정찬헌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정찬헌은 현재 2군에서 코치수업을 받고 있는 맏형 최동수의 이야기를 전하며 달라진 LG에 대해 스스로도 감화되고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는 자신도 강력해진 LG의 일원으로 확실히 힘을 보태고 싶다는 속내가 숨어있었다.
“동수 삼촌께서 SK에 계실 때와 지금 LG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걔들은 연패에 빠져도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속에서 긍정의 힘을 갖고 있다’라고. 그리고 지금 LG도 그렇게 된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저도 이제는 안 좋을 때는 빠르게 제 자신을 고쳐나가고 확실히 보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정찬헌은 다음 시즌 LG가 자랑할 만한 투수 유망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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