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도 날려버릴 섬뜩한 미소로 지난 2개월간 시청자들을 가슴 졸이게 만들었던 배우 정웅인(42)은 요즘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의문으로 가득 찬 소름끼치는 미소를 짓던 정웅인은 브라운관에서 나와 한층 밝아진 모습과 행복한 마음으로 떠들썩한 인기를 온몸으로 맞았다.
정웅인은 지난 1일 종영된 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극본 박혜련, 연출 조수원)에서 살인마 민준국을 연기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많지 않은 분량에도 시청자들은 주인공보다 정웅인의 이름을 더 많이 기억했고, 그의 연기 하나하나가 화제를 모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패러디물이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KBS 2TV '개그콘서트' 등의 방송에서 그의 대사를 따라하고 있다.
이러한 인기에 대해 정웅인은 솔직하게 기뻐하면서도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자신이 잘한 부분은 잘했다고 인정할 줄 아는 쿨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웅인은 지난 5일 드라마 종영 후 가진 OSEN과의 인터뷰에서 작품과 연기, 그리고 인기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인기는 한 번 왔다가 지나갈 수도 있는 거지만 연기력을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은데 시청률이나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좋은 작용을 한 것 같아요. 결말에는 민준국이란 인물도 잘 풀어진 것 같아서 좋았고요"
사실 이 작품에서 민준국은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민준국 사건이 전체 줄거리의 큰 줄기이기 때문에 중요하긴 하지만 정작 정웅인이 등장하는 신은 별로 없다. 그러나 정웅인은 분량과 상관없이 주목받았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5장면 나온 황정민이 그해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듯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정웅인은 매 장면마다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했다. 물론 존재감만큼 탄탄한 연기력도 인정받았다.
"겸손하게 얘기하자면 시청률이 잘 만들어 준 것 같아요. 기존에 하지 않았던 역할인데 내가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인 부분도 있죠. 새로운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이 작품을 만나서 잘되니까 이루 말할 수 없게 좋죠. 내 인생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아요. 물론 내가 나온 장면이 캡처돼서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도 신기하죠. 하하하. 40대에 이런 게 시트콤이 아닌 이상 쉽지 않은데 확실히 남다른 작품이예요"

지난 1996년 SBS 드라마 '천일야화'로 데뷔한 정웅인은 시트콤 '세친구', 영화 '두사부일체', 드라마 '오작교 형제들', '선덕여왕' 등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왔고, 그 중에서도 '세친구'와 '두사부일체'는 크게 흥행하며 그에게 '코믹'한 이미지를 가져다줬다. 당시 정웅인은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내심 코믹연기자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가지고 있었다고.지난 1996년 SBS 드라마 '천일야화'로 데뷔한 정웅인은 시트콤 '세친구', 영화 '두사부일체', 드라마 '오작교 형제들', '선덕여왕' 등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왔고, 그 중에서도 '세친구'와 '두사부일체'는 크게 흥행하며 그에게 '코믹'한 이미지를 가져다줬다. 당시 정웅인은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내심 코믹연기자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민준국 캐릭터로 얻은 악역이미지가 굳어지지 않을까'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별다른 거부감이나 걱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악역 이미지가 굳어질까 걱정하진 않아요. 요즘은 쉬면 쉽게 잊히는데... 연기생활 16년의 이미지가 이 한 작품으로 잘 희석된 것 같아요. 연기력도 인정받고 목말라있던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됐죠.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영화 '전설의 주먹' 때 강우석 감독님이 저에게 ''두사부일체'의 모습을 재탕하는 이미지가 있어서 안타까웠다'고 하시면서 '올해는 악역만 맡아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약속도 꼭 지키려고 해요"
극중 민준국은 극악무도한 살인마였다. 물론 마지막 회에서 민준국의 사연이 밝혀지긴 했지만 섬뜩한 미소만으로도 공포감을 조성했고, 벨소리(I'll be there)만으로도 존재감이 상당했다. 정웅인에 따르면 '너의 목소리가 들려' 방송 이후 동네 주민들이 그를 피하기도 했다고. 보통 배우들은 캐릭터에 몰입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다고들 하는데 정웅인은 이 복잡하고 잔인한 살인마를 연기하면서 어땠을까.
"악역이라고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어요. 연기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아요. 리허설에 가서 대사를 외워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는 반면, 이번 작품은 촬영 며칠 전부터 줄곧 대사를 달고 살았어요. A4용지에 넣어서 차에 붙여놓고, 주머니에 넣어 다녔죠"
"그래도 강도를 조절하는 게 어려웠어요. 박수하를 노려볼 때도 너무 과장되지 않고, 느리지도 않게 뭐든 적절하게 해야 했죠. 마지막 장면에서는 안경을 쓰고 나오는데 과연 코와 입만으로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어요. 또 김해숙 선배님과 연기할 때는 '내가 과연 이 장면에서 웃어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수위 조절하는 게 힘들었죠"

올해로 데뷔 17년차가 된 정웅인은 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췄던 후배 배우 이종석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극중 이종석은 민준국을 끔찍하게 싫어하고, 그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초능력 소년 박수하 역을 맡았다. 이종석은 첫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연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정웅인 역시 이종석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종석은 인사도 잘하고 선배들을 배려해요. 또 내가 24~25살에 저렇게 연기를 맛깔나게 했나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내가 '오작교 형제들' 때 주원을 칭찬한 것처럼 이종석을 칭찬하고 싶어요. 이종석은 리허설도 열심히 똑같이 해요. 어떤 장면에서는 그게 공포심이 오기도 했지만요. 하하하"
한편 정웅인은 오는 14일 방송되는 KBS 2TV 드라마스페셜 'Happy! 로즈데이'를 통해 악역이 아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 작품에서는 걸그룹 원더걸스 멤버 소희, 배우 소유진 등과 호흡을 맞춰 또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세친구'와 '두사부일체'의 코믹연기부터, '오작교 형제들'의 자연스러운 생활연기, 그리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악역 연기까지. 데뷔 후 항상 다양한 역할을 맡기 위해 노력했던 정웅인이 탐내는 역할도 있을까. 또 그는 최종적으로 어떤 배우를 꿈꾸고 있을까.
"내 나이에 맞는 멜로를 해보고 싶어요. 40대의 묘한, 위험한 사랑? 그런 멜로도 해보고 싶고 겉모습은 번지르르하지만 행동자체는 밑바닥 인생을 못 버리는 삼류건달 역도 해보고 싶어요"
"60~70이 돼도 '꽃할배' 같은 프로그램에서 찾아주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분들이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살아남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그들만이 갖고 있는 묘한 분위기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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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이 기자 ouxou@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