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는 다작 배우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 ‘더 테러 라이브’(감독 김병우)를 비롯해 지난 1월에는 ‘베를린’(감독 류승완)으로 관객과 만났으며, 지난해에는 ‘577 프로젝트’와 ‘러브픽션’으로, 그 전 해에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의뢰인’을 선보이는 등 1년에 출연작 두 편은 꾸준히 내놓는 편이다.
여타 배우들이 출연작을 고르는 데 난항을 겪고 그러면서 작품 출연에 공백이 생겨 본의 아니게 신비주의 이미지를 덧입는 것과 달리 그의 작품 선택에는 거침이 없다. 액션, 스릴러, 로맨틱 코미디, 범죄, 멜로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캐릭터도 전성기 시절의 인기를 구가하려는 욕망 가득한 뉴스 앵커부터, 지질한 삼류 소설가, 북한 일급 비밀 요원, 부산 주먹계를 휘어잡은 상남자 조폭 두목 등 작품마다 각기 다른 옷을 입고 꼭 맞춰 입고 관객의 눈길을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그가 연기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른 캐릭터였지만 공통되게 생생함이 살아있고, 에너제틱 하되 과하지 않다. 어쩌면 이는 그가 먹음직스럽게 음식을 씹어 삼켜 일으킨 먹방 신드롬과도 무관치 않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하정우의 움직임에서는 먹는 모습마저도 생동감이 충만하다.

관객의 입장에서 그런 하정우를 1년에 두 차례 이상 만날 수 있는 건 행운이다. 좋은 작품이 훌륭한 배우를 만드는 건지, 좋은 배우가 작품을 훌륭하게 만드는 건지 선후 관계는 따질 수 없지만 배우의 신들린 연기를 커다란 스크린에서 즐길 수 있는 건 관객이 극장을 찾는 기쁨 중 하나로, 하정우가 이를 충족시키는 배우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듯 하다.
그리고 그의 그런 연기는 최근 개봉작 ‘더 테러 라이브’를 통해서 극대화된다. 이번 영화에서 하정우는 극의 70% 이상 화면에 등장하며 그야말로 원맨쇼를 펼친다. 오만함이 깃든 태도로 테러범을 대면하는 출발부터, 이 같은 만남이 자신의 출세를 위한 주춧돌이 되어줄 것을 직감하고 데스크와 딜을 하는 기회주의자적 움직임을 보이다 그러다 점차 테러범의 페이스에 휘말려 이른바 멘탈이 붕괴돼 혼이 나가는 과정이 97분 동안 스크린에 쏟아진다. 하정우는 이를 연기하며 두 눈이 충혈 되고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으며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등의 모습을 신기할 만큼 단계적으로 펼친다. 그는 테러범에 낚인 앵커로 분해 또 한 번 실감나게 생생한 연기로 관객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영화는 하정우의 이 같은 호연에 힘입어 개봉 6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35억 원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손익분기점도 넘어 이제 실속을 챙기게 됐다.
스크린에서 하정우를 만나는 기쁨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그는 현재 윤종빈 감독의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 촬영 막바지에 접어들었으며, 이 외에도 중국 작가 위화의 베스트셀러 소설 ‘허삼관 매혈기’가 영화화되는 작품에서 주연 및 감독을 맡아 또 한 번 관객과 만난다. 이 밖에도 그가 연출한 영화 ‘롤러코스터’ 또한 올 가을 개봉된다. 하정우의 다작이 반갑다.
sunh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