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됐다 XX”
배우 이병헌은 할리우드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찍은 영화 ‘레드:더 레전드’(감독 딘 패리소트)에서 실감나게 욕설을 내뱉어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폭소를 터뜨린다. 극 막바지 그가 내뱉는 차진 욕설은 세계 최고 수준의 파괴력 넘치는 극중 킬러의 이미지를 단번에 전복시키지만 깨는 이미지 보다는 오히려 친근함과 더불어 극중 그가 처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을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게 표현해 호응을 얻는다.
이병헌 뿐만이 아니다. 충무로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올 여름 스크린에서 시원하게 욕설을 내뱉는다. 배우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과 함께 한 글로벌 프로젝트 영화 ‘설국열차’에서 등장과 함께 걸쭉한 욕설을 내뱉고, 배우 하정우는 원맨쇼 영화 ‘더 테러 라이브’(감독 김병우)에서 장난 전화 그만 하라며 협박어조가 담긴 욕으로 관객들의 웃음보를 자극한다.

배우들이 영화에서 욕설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극중 캐릭터를 표현함에 있어 욕설만큼 강렬하고 확실한 표현법도 없기 때문. ‘설국열차’의 송강호는 극중에서 “그래 듣고 있다 XX”라는 대사를 맛 깔진 욕과 함께 차지게 내뱉으며 17년간의 열차 생활 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회한 보완설계자 남궁민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조연으로 출연, 송강호는 극이 시작된 지 30분 만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이 같은 강렬한 모습은 뒤늦은 등장에도 관객의 뇌리에 단박에 각인되기에 충분하다.
이후에도 그는 체제 밖 세상을 갈망하는 남궁민수의 거칠면서도 주도면밀한 캐릭터를 극이 진행되는 내내 일관되게 유지하며 극의 막바지 키플레이 역할을 소화한다.
‘더 테러 라이브’의 하정우는 대외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분명한 차이가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음을 욕설로 관객이 알아차리게끔 한다. 마감뉴스 간판 앵커로 활약하다 라디오 진행자로 좌천된 윤영화를 연기하는 그는 라디오 생방송 도중 신세 한탄에 가까운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청취자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이제 그만 전화끊으라고 윽박지른다. 누군가에겐 진실만을 말하는 입으로 인식되며 대외적으로 두터운 신뢰도의 옷을 입었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약자를 함부로 대하고 비웃어주기까지 하는 캐릭터가 한 마디 욕설로 인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특히 윤영화 캐릭터는 극중에서 기자인 아내의 특종을 자기 이름으로 대신 보도해 언론인 상을 받고 자기 영달을 위해 테러 신고를 늦출 정도로 영악한, 이미지와 실제가 여실히 다른 캐릭터라는 점은 극 초반 그가 내뱉는 걸쭉한 욕설을 시작으로 영화 내내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이후 이 청취자가 테러범으로 돌변한 뒤 윤영화가 이를 생중계하는 과정에서 욕설은 녹음돼 전국에 고스란히 퍼지고 인물은 이른바 ‘개망신’을 당하는 등 욕으로 시작된 캐릭터 윤영화의 시련은 거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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