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머니 우선?’, 아쉬운 청룡기 결승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3.08.07 06: 00

상대 추격 손길을 뿌리치는 깨끗한 2루타. 여기서 상대 수비 실책이 나오며 3루까지 진루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런데 타자주자는 2루에 멈춰 서 어퍼컷 세리머니와 함께 포효했다. 과연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이 모습을 좋게 봤을까.
덕수고는 지난 6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총 25안타를 기록하는 불꽃튀는 혈투 끝에 야탑고를 13-5로 꺾고 우승기를 들어올렸다. 지난해에 이은 청룡기 2연패이자 1986년 첫 우승 이후 네 번째 청룡기 우승이다. 황금사자기 우승에 이어 청룡기까지 거머쥐며 올 시즌 최강팀으로서 면모를 확고히 다진 덕수고다.
타격전 승리 속 아쉬운 점이었다면 바로 고교 선수들의 세리머니. 경기 분위기를 이끌어 오기 위한 파이팅 넘치는 모습이라면 보기 좋았으나 더 나아갈 수 있는 추가 진루 기회를 스스로 끊은 듯한 인상도 남았다. 적시 2루타 순간 상대 외야수가 이 타구를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담장까지 굴러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3루까지도 밟으며 후속 타자에게 더욱 가까운 타점 기회를 제공하고 팀에도 쐐기 득점을 선사할 수 있던 장면. 그런데 타자주자는 2루 베이스를 밟은 뒤 포효하며 허공에 어퍼컷을 날렸다. 기쁜 마음에 나온 동작이고 아직 젊은 선수인 만큼 이해할 만도 하지만 만약 접전 상황에서 이 행동이 나왔더라면 코칭스태프로부터 질타를 당했을 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적시타가 터졌다. 좌익선상으로 흐르는 타구. 일단 여기까지는 단타가 당연해 보였는데 홈 송구가 약간 빗나가며 상대 포수의 동작이 흐트러졌다. 충분히 타자주자가 2루까지 진루하며 후속 기회를 노려볼 법 했으나 타자주자는 1루 베이스에 머물러 양 팔을 들고 환호했다. 곁에 있던 1루 코치가 세리머니를 만류하는 장면도 나왔다. 상대를 도발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남아있으나 무엇보다 더 달아나며 팀에 좀 더 쉬운 승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도 아쉬운 일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이 모습에 대해 “상대의 허를 1차적으로 찌른 것 뿐만 아니라 추가 허점이 나왔을 때 확실하게 파고들어 이길 수 있는 모습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세리머니 때문에 그 허를 더욱 파고들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 어이없는 일이다”라며 부정적으로 보았다. 화려한 세리머니로 덕아웃 분위기를 끌어올려도 경기력에서 확실히 상대의 급소를 공략하지 못한다면 별무소용이다.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기본기를 갖추지 않은 느슨한 플레이나 경기 흐름을 읽지 못하고 기회를 놓치는 플레이를 극도로 싫어한다. 매사 추가 득점과 1점의 소중함을 강조했고 상대를 확실히 제압하며 경기 분위기를 장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재차 강조했다. 김 감독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악착같이 상대에게 달려들어 경기 분위기를 바꾸는 선수들을 좋아한다. 당연한 일이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패기 넘치는 세리머니도 사실 나쁘지 않다. 그러나 경기 상황에 맞지 않은 세리머니로 추가 진루에 실패, 상대를 더욱 압박하고 좀 더 편한 경기를 이끌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다면 결코 유망주에게도 좋은 평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프로 스카우트들은 좋은 운동능력도 선호하지만 승부처에서 확실하게 상대의 기세를 끊어놓는 재치있고 근성있는 선수들을 좋아한다. 이 선수들은 비록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하더라도 신고선수로라도 다음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그만큼 프로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는다. 지난해 신인왕 서건창(넥센)이 바로 그 케이스다. 이미 알려진 스타 플레이어가 아닌 유망주의 가치를 올려주는 것은 화려한 세리머니보다 상대 허점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재치와 반드시 이기겠다는 근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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