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0주년 기념 특집이라고 해서 융숭한 대접을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라디오스타’만의 독보적인 깐족거림은 한국 힙합 음악계의 전설 듀스 출신의 이현도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7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는 ‘힙합의 조상 듀스 특집’으로 꾸려진 가운데, 이현도를 자극하고 이에 발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이현도의 모습으로 연신 폭소가 터져 나왔다.
1993년 데뷔해 단 2년간 활동했지만 수많은 팬층을 현재까지 거느린 듀스와 그 핵심 멤버 이현도는 이날 한국 힙합 출발에 미친 엄청난 영향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보다는 오히려 깨는 모습으로 9년만의 지상파 방송 복귀 신고식을 치렀다. 이날 토크를 통해 드러난 이현도라는 인물은 개그를 하고 안 웃으면 후배를 째려보는 선배였으며, 축구팀에서는 지나치게 경기에 몰입해 공을 뺏기면 잔디를 무지막지하게 뜯어대는 진상 팀원이었다. 욱하는 성질에 CD를 주먹으로 깨부수기도 여러 번. 전설의 무게란 이현도에겐 없었다.

이현도라는 인물의 베일을 걷어내고 편한 접근에 의해 도출된 가볍고 사소한 특징들로, 이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은 단연 이현도와 함께 출연한 게스트들이다. UV 멤버 뮤지와 하하는 이날 특유의 예능감을 발휘해 이현도를 성대모사하고 그의 행동을 적절히 과장, 또 비틀었다. 이현도가 “오늘 두 번째 보는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두 사람은 이현도를 속속들이 아는 사이가 아님에도 이 같은 재연을 서슴지 않았고, 이현도 역시 이들이 던진 미끼를 덥썩덥썩 물며 욱하고 발끈하는 반응으로 ‘라디오스타’ 특유의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 자리에만 앉으면 사람들이 변하는 걸까, 깐족거림에 있어 독보적 재능을 뽐내는 ‘라디오스타’이기에 애초에 진지한 접근은 기대도 하지 않았건만, 듀스 20주년 헌정앨범에 참여하는 가수 자격으로 출연한 이들의 태도는 ‘라디오스타’라는 프로그램의 색깔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그렇다고 모두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이날 '라디오스타'가 이현도를 향해 던진 돌직구는 이전만큼 송곳 같지 않았다. 이현도라는 뜯어먹을(?) 게 많은 게스트를 데려다놓고 '라디오스타'이기에 꺼낼 수 있는 질문들이 이날은 자취를 감췄다. 이는 이날 방송이 김구라, 윤종신, 김국진, 규현 등 자기들끼리 장단을 맞춰 게스트를 쥐락펴락 하는 MC들의 활약이 덜했던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신정환, 고영욱 등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진 이들에 대한 깐족거림 보다는 진짜 대어 이현도를 향해 던지지 못한 짱돌은 그래서 아쉽다. 다른 곳도 아닌 이곳은 '라디오스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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