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이 '합숙폐지'의 긍정적인 나비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 7일, 부산 아이파크와 2013 하나은행 FA컵 8강전을 앞둔 FC서울 최용수 감독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줬다. 리그와 ACL, FA컵을 모두 소화하는 유일한 팀이었던 서울은 이날 경기서 하대성, 고요한, 윤일록 등 중심 멤버 몇 명을 벤치에 앉히고 백업 선수들을 기용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이상협, 고광민이었다.
경기 전 라커룸에 들어와 선수명단을 보면서 흐뭇해하며 "감독하는 낙이다, 흐뭇하다"고 되뇌일 정도로 선수층이 두터운 것이 자랑인 서울이다. 선수들의 기량은 주전 선수들과 비교해서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최 감독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서는 실전 경기인만큼 격려도 하고 몇 가지 당부하고픈 것도 있어 최 감독은 고광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신호음이 잠시 가더니 고광민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네, 감독님"하고 답하는 고광민의 목소리가 작아도 너무 작았던 것. 어디길래 그렇게 작게 말하냐고 물었더니 당황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저 지금 영어학원인데요..."
천하의 최 감독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답변에 턱을 뺄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도 생각나지 않은 채 "어... 어..." 소리만 반복하다 황급히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최 감독은 "내가 전화를 그렇게 빨리 끊은 적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라며 "집에서 혼자 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영어학원에 가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껄껄 웃었다.
고광민의 뜬금 영어학원 에피소드는 단순히 웃음만을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이제 영어로 선수들에게 지시를 해야겠다. 적어도 고광민이 아는 영어는 나도 알아야하지 않겠나"며 농담을 던진 최 감독이지만,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바로 서울의 합숙폐지가 불러온 긍정적인 나비효과였기 때문이다.
최 감독이 처음 합숙폐지를 선언한 이후 경기 전날 서울의 풍속도는 많이 바뀌었다. 혁신적이라고 해도 좋을 이 변화를 선수들은 쌍수들고 반겼고, 선수의 자율에 모든 것을 맡기는 감독의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더 철저하게 자신을 가꿨다. 집에 있으니 마음은 편하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늘었다. 효과는 리그 5연승 질주로 나타났다.
여기에 고광민처럼 효율적으로 자기 시간을 사용하는 케이스까지 등장했다. 최 감독이 합숙폐지를 통해 원했던 긍정적 효과의 대표주자였다. 최 감독은 "선수들도 개인시간을 이용해 다양한 사회활동과 많은 사람을 만나야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시야가 넓어지고 운동에서 얻지 못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비록 이날 FA컵 8강전에서 부산에 패하며 아시아 트레블의 꿈은 꺾였지만, 서울의 합숙폐지가 불러온 긍정적 나비효과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어쩌면 지금 서울 선수단 사이에는 '영어학원 붐'이 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costball@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