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드라마스페셜 단막 2013'의 '불침번을 서라'가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현대의 이기주의 세태에 경종을 울렸다.
'불침번을 서라'는 이웃에게는 무관심한 채 자기 살기에만 바쁜 아파트 주민들에게 느닷없이 배달되기 시작한 파란 쓰레기 봉투를 둘러싸고 연쇄 쓰레기 투기범을 잡기 위해 불칠번을 서며 벌어지는 소동을 미스터리 형식으로 풀어낸 드라마다.
‘별난 여자 별난 남자’, ‘사랑아 사랑아’를 연출하며 코믹하면서도 인간애가 진하게 느껴지는 드라마로 인기를 모았던 베테랑 이덕건 PD는 아파트 주민들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경쾌하게 그리는 동시에 이웃에 무관심하며 배려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세태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줬다.

추리소설가라는 직함을 걸었지만 백수와 다름없고 실질적인 가장인 아내 대신 살림을 맡아 하는 회찬이 사는 아파트에 어느 날부터 무단으로 쓰레기 봉투를 투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첫 피해자는 회찬의 아내이자 보험설계사인 민숙. 이후 회찬은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쓰레기 봉투 투척 사건에 추리소설가 특유의 관찰력과 추리력을 발휘해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사건 피해자들의 회의를 통해 불침번 서기에 나선다.
결국 꽃미남 경비 총각이 주민들에게 쫓겨나다시피 한 전 경비의 아들임이 밝혀짐과 동시에 아버지 때문에 복수했을 거라는 주민들의 믿음에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 이 소동은 일단락되지만 이후 동네 아이들의 대화를 통해 쓰레기 투기범이 그 아이들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고 놀라며 극은 마무리된다.
벽과 바닥을 공유하는 아파트 생활에서 요즘 사람들은 이웃과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정적으로는 먼 사이가 되기 일쑤다. ‘불침번을 서라’의 무대가 된 아파트 주민들도 다르지 않았다. 쓰레기 투기 사건 범인을 추적해 가며 이웃간의 오해가 꼬리를 물다가 결국 엉뚱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말았던 것. ‘불침번을 서라’는 각박한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쓰레기 투기 사건을 계기로 이웃을 알게 된 이들이 있기에 희망이 없지 않다는 메시지를 돋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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