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팀 모두 세이브 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마무리들이 등판했다. 그만큼 중요했던 승부였다. 내일 일정은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이 총력전에서 한현희(20, 넥센)와 박정배(31, SK)의 투구는 단연 빛났다. 중요한 상황에 올라 팀을 패배의 수렁으로부터 지켜냈다.
넥센과 SK는 9일 목동구장에서 연장 승부 끝에 4-4로 비겼다. 어느 한 쪽도 양보가 없었다. 두 팀 모두 사정이 급박했기 때문이다. 4위 넥센은 최근 4연패 중이었다. 더 이상의 패배는 4위 자리도 위태하게 할 수 있었다. 7위에 처져 있는 SK는 후반기 들어 매 경기가 총력전이다. 가만히 있어도 4위권과 멀어지는 판국에 패배는 곧 후진기어를 넣고 돌진하는 것과 같았다. 놓칠 수 없는 한 판이었다.
경기는 중반까지 팽팽한 양상으로 흘렀다.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했다. 넥센이 4회 이택근의 선제 솔로 홈런으로 앞서가자 SK가 6회 김강민의 희생플라이와 김상현의 2점 홈런으로 역전했다. 넥센이 6회 강정호의 3점 홈런으로 다시 앞서 나가자 SK는 7회 박정권의 적시타로 또 다시 동점을 만들었다. 양팀 선수들의 눈과 몸짓에서는 져서는 안 된다는 비장함이 흘렀다. 이는 벤치의 투수 운영도 마찬가지였다.

두 팀은 선발 강윤구(넥센)와 크리스 세든(SK)이 모두 5⅔이닝 밖에 소화하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후로는 불펜 싸움이었다. 그 중 가장 빼어난 구위를 보여준 선수는 한현희와 박정배였다. 구위는 물론 위기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배짱도 돋보였다. 올 시즌 팀에서 ‘믿을맨’으로 활약하고 있는 두 선수의 위용이었다.

넥센은 4-3으로 앞선 7회 두 번째 투수 송신영이 조동화에게 사구, 그리고 최정과 박정권의 연속 안타를 맞으며 동점을 내줬다. 그러자 넥센 벤치는 곧바로 한현희를 투입했다. 이재원의 희생번트로 1사 2,3루가 됐지만 한현희는 침착했다. 전진 수비 끝에 김강민을 2루수 땅볼로 처리한 한현희는 전 타석에서 2점 홈런을 터뜨리며 짜릿한 손맛이 남아 있었던 김상현과의 승부에서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며 팀을 벼랑 끝에서 구해냈다.
한현희는 이후 8회까지 24개의 공을 던지며 2이닝 동안 1피안타 2탈삼진으로 SK의 타선을 잠재웠다. 이는 동점을 허용한 넥센이 주저 앉지 않고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넥센에 한현희가 있었다면 SK에는 박정배가 있었다. 전날 1⅔이닝 동안 26개를 던지며 홀드를 챙겼던 박정배는 이날 또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7회 2사 2루 상황이었다. 진해수가 김지수에게 2루타를 맞자 SK 벤치는 박정배를 호출했다. 안타 하나면 다시 리드를 내줄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박정배는 침착했다. 이날 홈런을 터뜨렸던 이택근을 유격수 땅볼로 요리하고 불을 껐다.
이미 윤길현 진해수라는 필승조를 다 쓴 SK는 더 올릴 투수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박정배는 9회까지 SK 마운드를 책임졌다. 전날 26개의 공을 던졌음에도 이날 31개를 더 던지며 2⅓이닝 동안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버텼다. 전날의 피로도를 감안하면 말 그대로 혼신의 역투였다. 두 투수의 팽팽한 징검다리 작업 속에 경기는 연장으로 돌입했고 또 한 번의 진땀 나는 승부가 연출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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