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클리닝타임] 윤길현의 피멍과 SK 불펜의 명예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08.10 10: 10

조웅천 SK 투수코치는 “아직도 그 모양이냐”라고 핀잔을 줬다. 팀 동료 박희수는 “엄살이다”며 웃었다. 하지만 이들도 농담 이상의 말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속내가 착잡했기 때문이다. 윤길현(30, SK)의 오른어깨에 선명한 피멍을 본 반응이다.
윤길현은 지난 3일 문학 두산전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 팀이 7-3으로 앞선 2사 1,2루 상황에서 홍성흔의 직선 타구를 오른어깨에 맞았다. 모든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한 장면이었다. 끝까지 타구를 주시하며 버틴 윤길현이었지만 내야안타를 확인한 후 그 자리에 주저앉아야 했다. 팀 내 트레이너들은 물론 문학구장에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까지 마운드로 뛰어나올 정도의 큰 사고였다.
다행히 행운의 여신이 윤길현의 곁에 있었다. X-레이 검진 결과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윤길현은 “타구가 비껴 맞았다”라고 했다. 옆으로 튀어나간 이유다. 한 관계자는 “만약 타구가 어깨에 정면으로 맞아 앞으로 떨어졌다면 정말 큰 부상이 됐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말 그대로 운이 좋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상처는 남는 법. 윤길현의 오른어깨 전체에는 피멍이 크게 들어있었다.

그랬던 윤길현이 다시 마운드에 등장했다. 8일 목동 넥센전이었다. 선발 김광현이 5이닝을 마치고 내려가자 6회 마운드를 이어받았다. 1이닝 동안 2피안타로 다소간 불안감을 주긴 했지만 윤길현과 팀의 실점은 없었다. 9일에도 윤길현은 모습을 드러냈다. 6회 세든이 강정호에게 3점 홈런을 맞으며 흔들리자 2사 1루에서 마운드에 올라 이닝을 마무리했다. ⅔이닝 무실점이었다. 이틀 동안 37개의 공을 던지며 자신의 몫을 했다.
윤길현은 “나아졌다”라며 말을 아꼈지만 완벽한 상태일리는 없다. 공을 던지는 데 무리가 없을 뿐이지 욱신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쩌면 푹 쉬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윤길현은 반대로 최대한 빨리 회복하는 쪽을 택했다. 가뜩이나 여유가 없는 SK 불펜이다. 다들 고생하고 있는 마당에 자신이 빠지면 나머지 팀 동료들의 부담이 더 커진다. 올 시즌 명예회복에 대한 스스로의 강한 의지도 한 몫을 거들었다.
이처럼 SK 불펜 투수들은 제각기 하나씩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몸의 상처든 마음의 상처든 알게 모르게 선수들을 짓누른다. 특히 올 시즌 내내 불펜 불안이 계속되면서 선수들의 스트레스도 심하다. 한창 잘 나갔던 SK 불펜의 영화를 잊지 못하는 팬들의 심정이야 이해가 되지만 전유수 이재영 진해수 임경완 등의 투수들은 시즌 내내 비아냥의 대상이 됐다. 비난에서 자유로운 선수는 박희수와 박정배 정도에 불과했다.
그랬던 이들이 다시 뛰고 있다. 살인적인 무더위, 그리고 연일 계속되는 등판에도 가진 힘을 다 쏟아 붓고 있다. 투지는 성과로 이어진다. SK 불펜의 후반기 평균자책점은 3.08이다. 리그 2위다. 27명의 기출루자 중 홈을 밟은 주자는 5명뿐(.185)으로 이는 리그 1위의 성과다. 확 달라진 면모다. 분명 SK 불펜은 예전만큼 강하지도,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가진 능력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SK 불펜이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뛰고 있다. 윤길현의 피멍은 그 상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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