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수, 심장은 후천적으로 큰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08.11 07: 03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손꼽히는 선동렬 KIA 감독은 투수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로 ‘심장’을 뽑는다. 아무리 좋은 체격과 구위를 갖췄어도 긴장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면 제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어쩌면 진해수(27, SK)는 이런 선 감독을 비롯한 야구 관계자들의 눈에 ‘심장’이 약한 선수로 보였을지 모른다. 진해수는 건장한 체격, 그리고 140㎞ 후반대의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왼손투수라는 엄청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때문에 지도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손때도 많이 탔다. 하지만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흔들렸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모두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게 프로입단 후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심장은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한순간에 바뀌기 어렵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그래서 그럴까. 야구계에서는 진해수의 한계를 긋곤 했다. 불과 2달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지난 5월 SK와 KIA와의 2대2 트레이드로 전환점을 맞이한 진해수였지만 좀처럼 새로운 기분으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 5월 평균자책점은 6.14, 6월은 6.35였다. 왼손이 부족해 진해수를 트레이드 카드로 낙점한 SK로서는 낭패였다.

하지만 그랬던 진해수가 확 달라졌다. 7월 이후 16경기에서 평균자책점이 ‘0’이다. 8이닝에서 허용한 안타는 4개에 불과하다. 9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동안 볼넷은 3개뿐이고 그나마 8월 5경기에서는 단 하나도 없다. 주로 좌타자를 상대로 한 원포인트, 혹은 2타자 정도를 끊어 던지며 SK 불펜의 필승조로 거듭났다. 등판이 거듭될수록 그의 이름 앞에 붙어있던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불펜 요원의 특성상 항상 여유로운 상황에만 등판할 수는 없다. 진해수도 마찬가지다. 후반기 들어 10경기 중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7명의(득점권 5번) 타자를 맞이했다. 그러나 진해수는 이 상황에서 단 하나의 안타도, 볼넷도 허용하지 않았다. 땅볼만 6개, 삼진이 1개였다. 공이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철벽이었다. 전반기 주자가 있을 때 진해수의 피출루율은 3할1푼이었다. 말 그대로 다른 선수가 됐다.
그렇다면 진해수가 이런 위기상황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심장 단련이라도 거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진해수의 심장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굳이 달라진 것을 찾자면 믿음이다. 마운드에 올라 타자들을 하나씩 처리할 때마다 자신의 공에 대한 믿음이 붙는다. 얼굴 표정도 많이 침착해졌다. 성준 SK 투수코치는 “그래서 투수들에게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하다’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한다.
10일 문학 롯데전에서도 진해수는 자신의 임무를 명쾌하게 해냈다. 5-0으로 앞선 8회 2사 1루에서 상대 간판 타자 손아섭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볼 카운트가 3B-1S으로 몰렸지만 포수 정상호의 리드에 따라 바깥쪽 슬라이더를 연거푸 2개 던져 모두 헛스윙을 유도해냈다. 전준우의 타석 때는 148㎞의 빠른 직구를 바깥쪽에 꽂아 넣는 위력투를 뽐냈다. 이날의 경험은 또 다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키운다. 진해수의 심장은 그렇게 후천적으로 크고 있다. 전병두의 부상, 정우람의 군 입대로 왼손이 허약해진 SK로서는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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