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힙합 전성시대다. 텔레비전을 틀면 '비트를 쪼개 귀에 때려박는' 랩이 줄줄줄 흘러나온다. 음원차트에서 힙합이라는 장르가 갖는 영향력도 막강해졌다. 마니아 층을 겨냥했던 힙합은 다양한 장르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이제는 메이저 시장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리는 힙합 가락에 어깨를 들썩이며 아는 척을 하고 싶은데 뭐가 뭔지 몰라 조심스러운 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위해 '괴물 래퍼' 스윙스가 나섰다. 진짜 힙합이 얼마나 심오하고 매력이 있는 문화인지 두팔 걷어붙이고 알려줄 예정이다. 기간은 앞으로 두달. 힙합의 A부터 Z까지 아울러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스윙스는 두 손을 허공에 번쩍 들어보이며 외쳤다. "나 스윙스잖아." /편집자 주
임영진(이하 임); 힙합이 뭔지 먼저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아요.

스윙스(이하 스); 아, 중요하죠! 한 마디로 힙합은 '현대적인 전사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전에 흑인 노예들 중에서 제일 힘 세고 덩치가 큰 애들을 주인들이 싸움을 붙이고 했었대요. 이런 문화가 영향을 미친 거죠. 살아 남아야 하는 정서가 녹아 있다고 할까요.
임; 그렇게 치면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겠네요. 그래서인지 정서가 우리나라하고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스; 달라요, 아주 많~이 다르죠. 미국 애들은 유난히 자기를 표현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한국에서는 나대지 않고 다른 사람한테 피해주지 않아야 한다는 문화가 있는데 미국 친구들은 나대는 걸 자기를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길을 걷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바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그래요.
임; 그 차이가 거부감으로 다가오기도 하는데요.
스; 한국 대중들에게는 힙합이 좀 날라리 문화 같기도 하고, 싸가지 없어 보이기도 할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이런 예를 들어 볼게요. 미국에서는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흑인하고 백인이 같은 학교에 못 다니고, 물도 다른 걸 마셔야했어요. 그런 식으로 매우 눌린 민족이었던 거죠. 그래서 가사를 통해서 불만을 숨기지 않고 말하려는 게 있어요. 매우 솔직하고 원초적으로요. 미국에서는 날 것(Raw,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을 대표하는 음악이 힙합이에요. 그래서 보면 저도 그렇지만 래퍼들은 자신감에 넘쳐요. 스스로에게 자신을 갖고 확신을 가져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거든요. 전, 자신감으로는 좀 타고난 거 같기도 하지만요. 하하.
임; 내재돼 있는 분노, 화를 표출하는 게 힙합이었던 거네요.
스; 우리나라도 일본에 지배를 받았던 정말 가슴 아픈 과거가 있잖아요. 흑인들은 백인 사업가들에게 당했어요. 노동력이 필요하니까 데리고 와서 억지로 살게하고 성을 착취하기도 했고. 흑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넘 어오면서 본인들이 좋아했던 퍼커션 위주의 음악에 백인 사람들의 찬송가가 섞여서 흑인영가 같은 장르가 만들어졌어요. 이 장르에서 현대 음악의 모든 장르가 나왔다고 해요. 심지어 힙합까지도요.
임; 요즘 우리나라 힙합은 분노보다도 사랑에 방점이 찍히는 분위기인데요.
스; 잘 팔리잖아요.(씨익) 힙합은요, 멋을 어떻게든 증명하는 문화기도 해요. 여자, 사랑 이야기도 다르게 해야하죠. 발라드를 예로 들면 감성을 농축시켜서 막 불쌍한 척 하면서 '날 좀 봐죠'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힙합은 멋있어야 해요. 불쌍할 뻔 했는데 안 울어요. 누가봐도 불쌍한데 완전 '찐따'는 아니라는 느낌을 낼 수 있게, 그 감정선을 찾는 거죠.
임; 그런 음악은 힙합이 아니라는 시각도 많잖아요.
스; 가요스럽다는 점, 음악적인 틀이 힙합에서 멀기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하는 걸 거예요. 말은 힙합이고, 랩을 하는데 느낌은 대중가요라서요. 정말 안 어울리는 잡종 같은 느낌이 드니까 싫어할 수 있죠.
임; 그럼 그런 노래는 힙합이라고 할 수 없는 건가요.
스; 음, 이렇게 말할게요. 저도 피처링 많이 하고 가수들 작업에 같이 참여하기도 하는데요. '기본 틀'을 지키는데 멋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어요. 가요 같은 노래에 참여해도 멋이 있어야죠. 불쌍해도 멋있어야 하듯이요. 제이 지(JAY-Z)의 '송 크라이(Song Cry)'를 들으면 힌트가 될 거예요. 제목도 이별을 해서 마음이 아픈데 울수 없으니까 노래로 대신 울겠다는 의미로 '송 크라이'예요. 멋있지 않아요? 이건 꼭 들어봐야 돼요.
임; 기본 틀을 지킨다고 했는데 설명을 좀 해주세요.
스; 힙합 음악이라고 하면, 드럼 비트로 말할게요. 원투쓰리포 이렇게 진행되는 거예요. 여기서 원에 킥, 투에 스네어, 쓰리에서 킥이 엇박으로 들어가고 네번째 박자에서 다시 스네어. 당연히 조금씩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이걸 기본이라고 보시면 돼요. 많이 달라지면 논란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에요.
임; 우리나라 대중들에게는 왜 힙합이 퇴폐적인 음악이라는 인상이 강할까요.
스; 극단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밀고 나가기 때문이에요. 힙합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의 음악이 예술이지 도덕이 아니라고 말해요. 옳고 그름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는 게 음악인 거니까요. 물론 그 쪽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두고 여성 단체, 인권 단체에서 항의를 하기도 하는데요. '듣기 싫으면 안 들으면 되지. 이건 도덕도 윤리도 아니니까'라고 하면 할 말 없는 거예요. 미국 래퍼들 중에서도 그런 부분에 대해 반기를 드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한 가지 전제를 둬요. 어린아이가 다치게 되는 건 예외라고요.
임; 그럼, '스윙스가 하는 랩'이라고 할만한 본인의 특징 같은 게 있을까요.
스; 있죠. 우리나라 힙합 역사가 길어야 15년이에요. 처음 자리를 잡을 때 기득권에 의해서 무거워졌어요. 제가 생각하는 힙합의 매력 중에 하나는 '장난기' 거든요. 그걸 표현하지 못하는 게 있었죠. 그래서 펀치라인을 소개하려고 했어요. 펀치라인은 유머나 연설, 대화에서 빵 터지게, 상대를 웃게하는 부분인데요, 제 곡 중에 '펀치라인놀이'라는 곡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가사가 나와요. '너는 타이거JK와 다르게 미래가 없지'. 무슨 말인지 알겠죠.
임; 힙합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하면 되겠는데요. 그런데 스윙스가 무슨 의미예요.
스; 원래 '무드 스윙스'예요.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말이죠. 제 본명이 문지훈이거든요. 그래서 문 스윙스. 기분이 막 좋았다가 우울할 때는 끝도 없이 우울해지고 그래요. 전 외로움도 많이 타요. 불도 켜놓고 자고. 의외죠?
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느낌인데, 우리 다음에는 무슨 얘기해요?
스; 다음은 많이들 들어보셨을 거예요. '라임'이요. 재미있겠죠?
*오늘의 선곡; 제이지의 '송 크라이'
제이지의 앨범 '더 블루 프린트(The Blueprint)'에 수록된 곡으로, '뉴욕의 왕'을 자처하며 가족, 사랑, 의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래다. 비트와 운율의 조화가 환상적이라는 평. 이 중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려오는 걸 볼 수가 없어. 그래서 노래로 울어야겠어(I can't see 'em comin down my eyes. So I gotta make the song cry)'라는 가사가 스윙스를 감탄하게 했던 부분이다.
plokm02@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