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 문제로 부각된 극심한 빈부 격차와 그로 인한 계층 간 불화와 갈등은 할리우드발 블록버스터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래를 배경으로 그린 자본주의의 자화상은 극화돼 표현됐기에 더욱 치명적이다.
영화 ‘엘리시움’(감독 닐 블롬캠프)이 13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베일을 벗었다. 영화가 그린 디스토피아 미래는 여지없이 황폐하고 참혹했다.
서기 2154년 인류는 전쟁과 가난, 질병이 없는 유토피아 우주도시 엘리시움과 그와 대척점에 놓인 황폐한 지구로 나뉘어 계층 간 명확한 구분이 이뤄진다. 부유한 엘리시움 시민들은 스캔 한 번으로 몸속의 암을 치료받고 불에 탄 얼굴마저 30초 만에 복원시킬 정도로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지만, 지구에 남은 이들에게 삶이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처참한 일상일 뿐이다.

지구 시민 맥스(맷 데이먼)는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성심껏 살아보려 하지만 일터에서 치명적 방사선에 누출돼 단 5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고, 이때부터 엘리시움으로 가기 위한 맥스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엘리시움으로 가는 길은 단 하나, 몸속에 엘리시움 시민이라는 칩이 삽입돼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맥스는 지구에 사업차 들린 엘리시움 시민 칼라일(윌리엄 피츠너)을 습격하는데, 때마침 엘리시움의 장관 델라코트(조디 포스터)가 모의한 쿠데타와 맞물리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친다. 맥스가 습격해 탈취한 칼라일의 뇌 속에 든 정보는 엘리시움 시민이라는 것 외에 리부팅 프로그램이었고 어느새 그의 머릿속에는 엘리시움 시스템을 장악하는 프로그램이 이식된다.
영화는 이 같은 과정을 그리며 지구 시민 맥스가 엘리시움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절박하게 그려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또는 남 잘 되는 꼴이 배 아파 엘리시움에 가려는 게 아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무력을 동반할 수 밖에 없는 궁지에 몰린 맥스의 상황을 폭넓게 이해시킨다. 여기에 맥스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백혈병에 걸린 딸을 가진 프레이(앨리스 브리가)를 추가시켜 이들의 상황을 충분히 납득시킨다.
이는 맥스가 사업가 칼라일을 피습하는 과정에서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데, 엘리시움발 경찰인 로봇 드로이드의 차원이 다른 무력행사에도 악착같이 달려들어 결국 시민증을 따내는 맥스의 악전고투가 눈물겹다. 맷 데이먼의 현란한 움직임과 육지와 공중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스케일이 큰 액션이 압권이지만, 그보다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건 살고자 하는 맥스의 절박함이다.
그러나 영화는 막상 맥스가 싸워야 할 대상을 엘리시움의 체제나 시스템이 아닌 함께 지구에 사는 용병으로 대치시켜 아쉬움을 남긴다. 맥스의 엘리시움행을 막는 용병 크루거(샬토 코플리)는 엘리시움 시스템을 장악해 자신이 이 유토피아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며 영화의 메시지나 갈등의 사이즈를 축소시킨다.
또한 절박함에서 비롯된 맥스의 악전고투도 메시지 없이 거듭되다 보니 막바지로 갈수록 몰입도가 떨어진다. 결말 부분 맥스의 공리주의적 결단도 갑작스런 등장으로 반전의 충격을 떨어뜨린다.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2억 달러 이상의 흥행을 달성한 ‘디스트릭트9’의 닐 블롬캠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유려한 연출력이 빛난다. ‘디스트릭트9’에서 함께 했던 샬토 코플리 또한 악당으로 변신해 존재감을 과시한다. 맷 데이먼은 삭발과 타투를 통해 부랑아 같은 지구 시민으로 변신해 '본' 시리즈에 이어 고난이도 액션 연기를 유감없이 펼친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러닝타임은 109분이다. 국내 개봉일은 8월 29일로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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